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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걸순 (충북대학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101輯
발행연도
2022.1
수록면
233 - 271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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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팔균은 대한제국군과 만주 독립군의 가교적 독립운동가이다. 평산 신씨 소종계 문부인 「放債記」와 「收入記」를 통해 그가 진천에 낙향해 있던 1910~1915년 동안 보명학교 운영의 책임자였음을 밝혔다. 『鎭川郡光武量案』을 통해 그가 빈농을 면한 수준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이었음을 확인하였다. 그의 망명시점은 1914년경으로 수정하였고, 李承熙와 大同團 등 독립운동 세력과 일정하게 연관되어 있음도 새롭게 확인하였다.
지금까지 그는 중국군에 귀순한 마적대가 무기를 탈취하기 위해 공격해 오자 응전하다가 전사한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이 전투는 일제가 1924년 5월 독립군의 사이또 저격에 대한 보복 조치로 장작림 군벌에 독립군 토벌을 강요한 사실과 관련된 것임을 규명하였다. 東邊道尹 邴克莊은 신팔균과 ‘知己之友’를 칭하는 사이였다. 그는 신팔균이 대한통의부 군사위원장으로 부임하였음을 알고 만나고자 하였으나, 휘하의 중국군이 불의의 공격을 감행하여 신팔균을 전사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의 장엄한 순국 과정도 처음으로 확인하여 재구성하였다.
아내 임수명 자결의 의미는 ‘殉烈’로 정립하고 일부 오해를 바로잡았다. 그녀는 남편이 전사하자 주변의 강권으로 귀국하여 궁핍한 생활을 하였다. 뒤늦게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고 낙담해 있던 중 어린 현길이 죽자 곧 유복녀 계영을 죽이고 자결하였던 것이다.
장남 신현충은 부친과 계모 및 이복동생들의 잇단 상을 마치고 1927년 베이징으로 망명하였다. 그는 독립군 장교가 되기 위해 北方 軍官學校에서 수학하던 중 병고를 이기지 못하고 자결하였다. 그의 장인이 부친과 동지였던 조성환이란 사실도 처음 확인하였다. 그의 자결은 새로 발굴한 이세영의 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곧 그의 활동과 자결은 將臣 후예의 전통을 이은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평가하여 마땅하다.
1924년 신팔균의 전사 후 이해에 임수명과 신현길, 신계영이 죽었고, 1930년 신현충이 자결함으로써 將臣 가문 5인이 독립운동으로 비명에 스러졌다. 신팔균의 애잔한 가족사는 1920년대 독립운동의 이면을 보여주는 아픈 역사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대한통의부 군사위원장 신팔균의 전사
Ⅲ. 신팔균의 아내 임수명의 ‘殉烈’
Ⅳ. 그들의 자녀 신현충·신현길·신계영의 죽음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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