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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낙민 (한국해양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해항도시문화교섭학 해항도시문화교섭학 제26호
발행연도
2022.4
수록면
91 - 127 (37page)
DOI
10.35158/cisspc.2022.04.2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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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충신 정몽주는 14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과정에서 위기에 처한 고려의 사직을 지키고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7번 사행에 나섰다. 본 논문에서는 정몽주의 해양 인식과 왜구문제에 대한 인식에 큰 영향을 준 ‘賀平蜀使’(1372)와 일본 사행(1372)을 전기 사행으로 규정하고, 중국과 일본이라는 지역에 구속되어 위의 두 사행을 분리해서 연구한 기존의 연구와 달리 왜구문제에 대한 정몽주의 인식과 해결을 위한 노력이라는 연장선상에서 고찰하였다.
정몽주는 ‘賀平蜀使’를 통해 명태조의 고려에 대한 인식과 왜구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확인하게 되었다. 나아가 명태조가 실행한 해금정책이 왜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고, 고려가 원나라와의 관계를 지속하고 왜구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명의 침공을 받을 수 있다는 현실 인식을 갖게 되었다. 정몽주는 왜구가 단순히 고려와 일본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명과 고려의 관계까지도 규정하는 삼국 공통의 외교 사안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정몽주는 왜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왕의 외교적인 노력에 동참하여 큰 성과를 이룩하였다. 그의 일본 사행은 양국 간에 일정 정도 신뢰관계가 조성 된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정몽주가 가진 중국정세에 대한 이해와 개인적인 능력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정몽주는 일본을 방문하여 이웃나라와의 교제의 도리를 밝혀 상대를 설복하고, 賀平蜀使를 통해 자신이 보고들은 중국의 상황과 왜구 금압에 대한 명태조의 강력한 의지를 들려주며 왜구문제가 천하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역설하여 양국의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정몽주의 일본 사행 이후, 일본과 고려의 通交는 무로마치막부가 아닌 규슈의 실력자 이마가와 료슌이 주도하는 독점상태가 되었다. 정몽주는 료슌과의 담판을 통해 왜구들에게 잡혀간 고려 피로인들을 처음으로 쇄환하는 성과를 이끌어 내었으며, 왜구의 근거지인 삼도에 대한 막부의 통제력을 강화시켜 일본인들의 칭송을 받게 되었다. 정몽주는 전기 사행을 통해 이전 그 누구도 이룩하지 못한 뛰어난 외교적 성과를 만들어 내었고, 일본 사행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일본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양민들의 쇄환을 가능하게 하였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정몽주의 ‘賀平蜀使’
Ⅲ. 정몽주의 일본 사행
Ⅳ. 나오는 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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