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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심현철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54호
발행연도
2022.4
수록면
153 - 197 (4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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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아직 본격적인 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는 금척리 고분군에 대해 정밀 지형도를 바탕으로 입지와 분포를 검토하고, 일제강점기 이래 남겨진 각종 도면과 사진자료, 관련 기록 등을 기초로 예비적 차원의 고찰을 시도한 글이다. 구체적으로 일제강점기 관련 자료와 해방 이후 수습조사 형태로 진행된 각종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금척리 고분군의 특징을 정리하고 대릉원 일원의 중심지 고분군, 방내리 고분군과 비교 검토함으로써 금척리 고분군의 성격을 밝히고자 하였다.
그 결과, 금척리 고분군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금척리 고분군은 내부구조로 목곽과 적석부를 갖추고 호석과 봉분을 설치한 전형적인 적석목곽묘가 중심 묘제이다. 고분군은 大川과 이에 합류하는 支川이 만나는 끝부분 즉, 하천변에 입지하는 川邊古墳群이다. 봉분의 외형은 반구상을 이루지만 평면형태는 타원형이며, 봉분 지름 10m 전후의 소형분에서 최대 40m의 대형분까지 50여기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봉분은 기본적으로 단일원분이지만 2기 이상을 평면적으로 붙여나가는 연접분도 확인된다. 고총들 사이에는 소형의 적석목곽묘와 석곽묘, 옹관묘, 목곽묘, 토광묘 등 다양한 묘제가 혼재하고 있는데, 나란히 붙어있어 소위 다곽식 형태이다. 봉분 외곽의 호석 주변으로는 대호를 활용한 다양한 제사유구도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금척리 고분군은 5~6세기대를 중심으로 조영되다가 석실묘의 출현과 함께 축조가 중단되며, 묘역이 인근 말암산 일대로 옮겨지게 된다. 단 새로운 묘역에서 신묘제인 석실묘가 축조되기 시작하지만 일부 적석목곽묘는 계속해서 축조되다가 6세기 중반 무렵 완전히 소멸한다.
이러한 금척리 고분군의 특징은 입지, 분포, 축조방식, 내부구조, 경관, 조영 흐름 등 모든 면에서 대릉원 일원과 동일하다. 아직 정확한 내부구조와 출토유물 등 구체적인 모습은 들어나지 않은 상황이지만, 지금까지 관찰된 내외적인 양상으로 보아 금척리 고분군을 대릉원 일원과 완전히 동일한 정체성을 가진 고분군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편,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금척리 고분군 관련 도면과 사진을 검토한 결과, 고분군을 가로지르는 도로에 의해 6기의 고분이 훼손되었으며, 당시 총 49기의 봉분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현재 사용되고 있는 배치도에는 총 52기로 확인되는데, 단순히 3기가 추가된 것이 아니라 서로 일치하지 않는 고분이 존재한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도면이 해방 이후 한국 학계에서 활용되지 못하고 1980년대에 새롭게 배치도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배치도는 작성 당시의 잔존상태만을 고려한 것이기에 소형분이라 파악된 것 중에는 고분이 아닌 것도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향후 정확한 분포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며, 정확한 배치도를 바탕으로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위치와 분포
Ⅲ. 조사 현황
Ⅳ. 금척리 고분군의 특징
Ⅴ. 금척리 고분군의 성격
Ⅵ.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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