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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목간학회 목간과문자 목간과문자 제28호
발행연도
2022.6
수록면
119 - 165 (47page)
DOI
10.35302/wdis.2022.06.2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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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諾思計墓誌」는 2011년 한국학계에 처음 소개된 후 현존 유일의 ‘당대 발해인’ 묘지로 평가되는 묘지이다. 다만, 「낙사계묘지」에서 그 출신을 발해인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료적 근거는 오직 ‘扶餘府大首領’ 뿐인데, 이 글에서는 「낙사계묘지」의 부여부를 발해의 부여부로 파악하는 기존의 이해에 의문을 제기하고 「낙사계묘지」를 분석하여 낙사계의 출신과 그 투항 배경을 말갈사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였다.
「낙사계묘지」의 분석 결과, 첫째 투항수령 낙사계의 인명 특징으로 볼 때 낙사계는 粟末靺鞨 출신의 당대 이민족 집단의 수장이고, 둘째 투항 이후 范陽 盧氏에 사성된 사실로 볼 때 낙사계 및 그 집단은 幽州(范陽郡)에 안치되어 幽州節度使(范陽節度使) 휘하의 蕃將과 蕃兵으로 활약하였으며, 셋째 부여부는 고구려에 부속된 속말말갈을 통할하던 욕살급 대성인 扶餘城에 설치된 安東都護府 관하의 ‘扶餘州都督府’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7세기 후반 고구려의 멸망 이후 부여성 지역의 속말말갈 집단은 반당 투쟁을 거치며 안동도호부 관하에서 이탈함으로써 당의 기미지배에서 벗어나 자립적인 생활을 영위하였을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낙사계 및 그 집단이 ‘扶餘’로 지칭되었다는 사실에서 낙사계의 출신은 고구려에 부속된 속말말갈로서 7세기 후반 고구려의 멸망 이후 靺鞨諸部의 재편 과정에서 새롭게 출현한 ‘扶餘靺鞨’이며, 부여말갈과 마찬가지로 고구려에 부속된 속말말갈에서 출현한 ‘渤海靺鞨’의 정치·군사적 압박 속에 8세기 초반 발해에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당에 투항하였을 것으로 추론하였다.
「낙사계묘지」는 6세기 후반~7세기 초반 고구려의 정치·군사적 압박으로 수·당에 내부한 속말말갈의 突地稽 집단 및 烏素固 부락, 그리고 고구려에 부속된 속말말갈로서 고구려 멸망 이후 발해를 건국한 大祚榮 집단(乞四比羽 포함)의 ‘渤海靺鞨’ 외에 또 다른 유형의 속말말갈 집단인 ‘扶餘靺鞨’의 자취를 증언하는 사료라는 측면에서 그 사료적 가치를 재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 낙사계는 발해인일까
II. 「낙사계묘지」의 판독과 역주
III. 「낙사계묘지」의 주요 내용
IV. 낙사계의 출신과 그 투항 배경
V. 맺음말 - 「낙사계묘지」의 사료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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