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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연학 (국립민속박물관)
저널정보
국립민속박물관 민속학연구 민속학연구 제50호
발행연도
2022.6
수록면
6 - 49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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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기는 흔히 농기라고 부르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큰기·대기·용기·용포·용당기·용대기·용담기·용덕기·용술기·신농기·덕석기·농상기 등 다양하다. 그 가운데 ‘용’자가 들어간 명칭은 용 그림을 새긴 농기이며, 충청도, 전라도 지역에서는 ‘용대기’라고 한다.
농기는 거는 형태에 따라 가로형과 세로형으로 구분되고, 기내 표현 방식에 따라 글자형, 그림형으로 나뉜다. 가로형의 경우 용 그림(이하 용대기)이나 신농유업(神農遺業)·신농지업(神農之業, 이하 신농기) 등을 새긴 경우가 많으며, 세로형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也), 이하 대본기)’ 글자를 위에서 아래로 길게 적었다. 그런데 용대기는 주로 충남, 전북 지역에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반면, 대본기는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농기의 기원에 대해서 신기(神旗), 군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식하지만, 농기는 조선 후기 두레와 맥을 같이한다. 두레 농기의 초창기 기록인 1738년(영조 14)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에서 ‘기치(旗幟)’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며, ‘백년민속(百年民俗)’이라는 표현을 통해 전라도 지역의 두레농기는 17세기에 이미 보편화되었음을 말해준다. 다만 농기의 형태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다.
문헌과 현존하는 용대기를 통해 민간의 용대기는 19세기경 분포권이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용은 왕권의 상징이기에 민간에서 반차도의 용대기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하여 민화적 요소를 가미하고, 기우(祈雨)를 열망하는 농민의 심성을 그림으로 반영함으로서 왕권과 차별화 하였다. 현존하는 용대기에 비구름과 수신(水神)인 용과 함께 거북·잉어, 농사의 신인 신농씨(神農氏), 물 관리 도구인 살포가 등장하는 것이 그것을 방증한다. 그리고 19세기 말 조선 왕조에서 대한제국(1897-1910)으로 국호가 바뀌면서 의장기는 사각형에서 삼각형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민간에서 조선시대 사각형 의장기를 용대기로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데 일조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용대기의 기원과 특징, 상징적 의미를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두었다. 특히, 한국 내에서도 충남 내포지역과 전북 지역에서 용대기가 두드러지게 많이 현존하는 원인을 찾는 것 또한 하나의 과제로 삼았다. 연구방법은 현지조사를 비롯해 조선왕조실록, 조선후기 문집, 신문기사, 현존자료, 조사보고서, 논문 등을 참고로 하였다.

목차

1. 머리말
2. 농기의 등장
3. 용대기 특징과 상징
4.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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