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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진한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48집
발행연도
2022.7
수록면
7 - 36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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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대왜인식을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변동과 관련해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먼저 기원을 전후한 시기부터 세기 무렵이다. 당시 일본열도는 수많은 나라들이 분립해 있었으며, 왜인이 낙랑군으로 와서 교류했다. 왜에 대한 정보는 주로 낙랑군을 매개로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이 무렵 고구려의 대왜인식은 피상적인 인지수준에 머물렀을 것이다.
3세기 들어 공손씨가 대방군을 설치했으며, 위의 동방정책으로 왜에 대한 정보도 크게 늘어났다. 일본열도 내에서는 대란을 거쳐 0여 국으로 통합되었다. 위는 38년 비미호를 책봉하여 왜종족을 대표하는 왜왕으로 인정했다. 고구려는 인접한 대방군을 통해 왜의 위상변화를 인지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4세기 초 낙랑·대방군이 소멸되었다. 이 시기 고구려와 백제는 부여의 정통성과 낙랑·대방일대의 점유를 놓고 경쟁했다. 그 과정에서 고국원왕이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양국관계는 악화되었다. 이에 따라 백제가 대비책의 하나로 왜와 손잡으면서 고구려의 대왜인식도 적대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목차

요약
1. 머리말
2. 3세기 이전 고구려의 대왜인식 형성
3. 4세기 고구려의 대왜인식 변화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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