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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정용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79집
발행연도
2022.8
수록면
175 - 211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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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공산당 이르쿠츠크파는 일체의 민족주의를 배격한 ‘극좌’ 노선을 표방하여 민족운동으로부터 분리된 집단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이들이 태동한 시베리아 한인사회는 국민회 시베리아 지방총회를 중심으로 1910년대 민족운동의 무대로 기능했다. 러시아 혁명에 이르기까지 시베리아 한인사회 내에 기존 민족운동과 사상적으로 유리된 집단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사회주의 수용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
시베리아 한인의 사회주의 수용은 서시베리아 및 유럽 러시아와, 동시베리아에서 각기 다른 주체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를 선도한 전자는 모스크바에 총회를 둔 새로운 국민회 조직에 의해 민족해방운동의 수단으로 사회주의를 수용했다. 외무인민위원부의 후원을 받는 이들은 콜차크 정권의 붕괴와 함께 동진하여 동시베리아로 세력을 확장했다. 한편 이르쿠츠크에서는 볼셰비키와의 연계를 지닌 남만춘과, 소규모 민족운동 세력을 이끄는 조훈이 결합하여 독자적인 공산그룹을 조직했다. 이들은 1920년 1월 러시아공산당 이르쿠츠크 주위원회 고려부로 편제되었으나, 현지 한인사회의 호응을 받는 국민회 이피득의 공세로 조기에 세력을 상실할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나 곧 이피득을 ‘민족주의적 편향’의 혐의로 지역 당에 고발함으로써 형세를 역전시켰고 이후 자신들을 ‘민족주의에 대적하는 공산그룹’으로 정체화하기 시작했다. 이어 옴스크 국민회 내의 청년반대파와 결합한 고려부는 모스크바 한인공산위원회까지 제압함으로써 독자적인 당 건설을 지향하는 집단으로 성장했다.
이처럼 민족주의를 배격하는 이르쿠츠크 공산그룹 특유의 지향은, 시베리아 한인사회에 내재된 지역적 특수성의 발현이 아니라 초기 한인 공산그룹 간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수단으로 마련된 것이었다. 때문에 이들은 후일 변화된 정세에 따라 원동민족대회 이후 기존의 노선을 철회하고 빠르게 민족통일전선을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목차

1. 머리말
2. 1910년대 시베리아 한인사회와 국민회
3. 시베리아 한인사회의 사회주의 수용
4. ‘민족주의와의 투쟁’과 이르쿠츠크 공산그룹의 형성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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