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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허태구 (가톨릭대학교)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46권
발행연도
2022.2
수록면
199 - 238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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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선조대부터 인조대까지 최고위급 군사?외교 전문가로 활약한 張晩(1566∼1629)의 대외정세 인식과 대중국 외교현안에 대한 대응을 살펴보았다. 이 논문의 중요한 논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장만의 대후금 인식과 평가는 後金의 세력이 확대되고 이를 둘러싼 대외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 그러나 장만을 비롯한 인조대 조정의 君臣들은 후금의 최우선 공격 목표를 조선이나 毛營이 아닌 中原으로 판단하여, 정묘호란 직전까지도 후금의 전면적인 침략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인조대 초반의 조선의 가장 중요한 안보 이슈 가운데 하나는 毛文龍과 요동 난민에 대한 대응이었다. 장만은 후금에 대한 모문룡의 과시적이고 도발적인 무력시위가 조선과 후금 사이의 우발적 교전을 야기하는 상황을 우려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방어 태세 강화를 시종일관 주장하였다. 둘째, 장만은 深河 패전으로 초토화된 關西 지역의 전후 수습을 전담하며 광해군의 관망적이고 양단적인 외교노선에 힘을 보탠 유능한 실무형 관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명과 관련된 다양한 외교현안을 다룰 때에는 여전히 對明義理라는 명분을 강하게 인식하며 대처하였다. 인조대 모문룡 문제를 처리할 때에도 이와 유사한 그의 입장과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對明事大가 대명의리라는 명분에 함몰되어 조선의 국익을 방기하는 성격의 것은 전혀 아니었다. 이러한 그의 행보는 후금에 대한 강경한 척화론을 주장하였던 李爾瞻, 柳希奮 등과는 구별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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