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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강봉룡 (목포대학교)
저널정보
호남사학회 역사학연구 역사학연구 제86호
발행연도
2022.5
수록면
5 - 42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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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왕의 권위의 변화에 따라 용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간 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먼저 첫 단계의 왕은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王卽天神’의 원초적 신성 이념에 의존하였으니, 이 단계의 용은 그런 ‘왕즉천신’을 하늘에서 모셔오고 하늘로 모셔가는 신성한 ‘神乘物’로 인식되었다. 두 번째 단계의 왕은 불교의 전래 및 공인과 함께 ‘王卽佛’이라는 차별적인 신성 권위를 표방하였고, 일단 용은 ‘왕즉불’의 표상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신라의 경우 왕이 護法과 護國을 망라하는 ‘불국토의 주인’으로 인식되면서, 용은 왕을 보좌하는 ‘불국토의 수호신’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세 번째 단계의 왕은 ‘爲民’을 실천하여 ‘尊王’의 권위를 확보한다는 유교적 규범을 지향하였고, 이에 따라 용은 왕의 신성 권위를 직접적으로 扶助하는 존재가 아니라 佛僧을 매개로 하여 왕의 호법과 호국의 권능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7세기 동아시아 해양 갈등과 교류 및 교역이 폭증하는 현상과 맞물려 나타났으며, 龍도 天龍이나 地龍보다는 海龍의 존재로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리고 네 번째 단계에 이르면 마침내 ‘왕은 용의 현신’이라는 ‘王卽龍’의 인식이 대두한다. ‘왕즉용’의 인식은 마한→백제로 이어지면서 성립하여 후백제의 견훤으로 이어졌고 고려의 왕건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왕건이 최후의 승리자가 되면서 ‘왕즉용’의 인식은 고려시대에 본격 정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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