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동훈 (계명대학교 국제학연구소)
저널정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82호
발행연도
2022.3
수록면
413 - 439 (27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마키야마 고조(牧山耕?)는 나가사키현 이키 섬에서 출생한 인물로 조선으로 건너와 언론인으로 활동하다가 중의원 의원(代議士)으로 성장한 인물이다. 재조선 일본인 인물군에서도 다소 찾아보기 힘든 복합적인 성격의 인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는 다이쇼 시기 조선 관련 종합잡지를 창간하고 유력 민간 신문사를 경영했으며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된 후에는 일본 ‘내지’와 식민지 조선을 오가면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확대해갔다. 마키야마는 식민지 문제를 본국 정부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이를 개선·해결하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실정에 대한 이해와 정보력을 바탕으로 마키야마는 중의원 내 관련 위원회에 참석하여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정책에 대해 의견을 피력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마키야마는 조선총독부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성장했으며 ‘식민문제의 일인자’라는 평판을 얻기도 했다. 이러한 마키야마의 중의원 의정활동과 언론인으로서의 활동은 당시의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시대 흐름 속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일본 ‘내지’에서 확산되는 데모크라시 흐름 속에서 마키야마는 입헌주의를 표방하고 정치 개혁과 언론의 자유를 지향점으로 삼았다. 하지만 조선의 식민지 통치와 관련하여 특히 피지배민족인 조선인 사회에 대한 인식에서 한계를 보였다. 3·1운동을 조선인들의 무지에서 기인한 폭동으로 인식했으며, 일본인과 조선인 사회의 분리·구별을 정당화했다. 마키야마는 정치인과 언론인을 넘나들며 입헌정치와 언론의 자유를 주창했으나 당시 일본의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지닌 양면성, 즉 ‘안으로는 입헌주의, 밖으로는 제국주의’라는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