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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정범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중앙문화재연구원 중앙고고연구 중앙고고연구 제37호
발행연도
2022.2
수록면
37 - 59 (23page)
DOI
http://doi.org/10.20292/jcich.2022.3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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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에 백제에는 당식 대장식구가 도입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였다. 그러나 최근백제 존속 당시 조성된 유구에서 당식 대장식구가 출토되는 사례가 조금씩 증대되면서 이에 대한 검토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현재까지 백제 유적에서 출토된 당식 대장식구는 쌍릉 대왕릉·삼담리 석실·미륵사지 서탑·왕궁리 가마터 등 현재의 전라북도 익산시 내의 유적에 국한되며 대장식구의 연대는 대체로 7세기 전반경에 해당된다. 이는 무왕이 익산지역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시점과 부합하므로 무왕대 익산에한정되어 제한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백제에서 이를 소유하던 계층은 익산에 기반을 둔 재지의 신흥세력이면서 무왕의 익산 경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사비기 백제는 이미 역심엽형 대장식구와 은화관식으로 구성된 완성된 관복 시스템이 정착되었기 때문에 당식 대장식구는 널리 확산되지 못한 채 단절된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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