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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상범 (한국외국어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베트남학회 베트남연구 베트남연구 제20권 제2호
발행연도
2022.12
수록면
171 - 204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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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도성 공간에서 거행된 국가의례를 중심으로, 탕롱의 의례도시적 성격과 리 왕조가 지향했던 통치이념의 점진적인 변화과정을 추적해보았다. 리 왕조는 불교세력의 열성적인 지지를 받으며 건립되었기 때문에, 불교의례가 국가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도입되었다.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는 궁성의 중심에 위치한 용지광장에서 ‘인왕회’ 등을 거행하며 국태민안을 기구하였다. 지역신앙도 국가의례의 일환으로 채택되었다. 특히 용지에서 거행된 동고산신 의례는 지방 세력들이 황권에 대한 충성을 주기적으로 맹서하는 의례로서 그 위상을 확고히 했다. 리 왕조는 탕롱 천도를 통해서 당초 고변이 건립한 방형 성곽도시를 계승하였고, 도성의 기본 구조와 전각 명칭도 중국식 도성제도를 모방했지만, 도성 구획의 기준이 되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은 전통적인 ‘좌조우사(左祖右社)의 구도 대신에, 불사와 도관을 선택하였다. 하지만 향후 탕롱정권은 당송시기의 전통 도성의례를 점진적으로 수용하였다. 태묘는 황제가 친정이후 포로를 바치는 개선의례로, 탄일행사는 황권을 선양하는 의례로 활용되었다. 리 왕조의 황제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표출한 의례는 성경, 성렴 등 농업의례였다. 인종이후에는 도성에 문묘가 설립되었고 공자와 유교 선현을 제향하는 석전례도 거행되었다. 리 왕조 시대는 불교의 정치적 영향력이 지대한 시기였지만, 적어도 의례상에 있어서는 유교화 추세가 점진적으로 강화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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