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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고영진 (광주대학교)
저널정보
호남사학회 역사학연구 역사학연구 제68호
발행연도
2017.11
수록면
61 - 95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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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가 살았던 시대는 두 차례의 큰 전쟁으로 나라가 존망의 위기까지 몰렸던 시기였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정치적으로나 사회경제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시기였다. 윤선도 역시 그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였다. 그러나 5년 동안의 大君師傅 시절을 포함해 총 10년에 못 미치는 관직생활과 3번에 걸친 15년간의 유배생활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삶이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니 파란만장했다고 하는 것이 사실에 더 부합할 것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을까? 그 이유에 대해 적지 않은 연구자들이 붕당정치기라는 시대적 환경 외에도 윤선도의 성격과 기질을 든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직선적 성격, 원칙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사고방식, 남과 융화하지 못하는 성격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상소를 비롯해 윤선도가 행한 많은 정치적 행동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는커녕 목숨까지 내걸어야 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럴 경우 많은 고민과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는 윤선도 자신의 글에서도 잘 드러난다. 따라서 그의 행동들을 성격이나 기질 탓으로 돌려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보는 것은 문제가 없지 않다. 당시 윤선도의 생각과 행위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한 결 같이 그가 ‘敢言之士’ 그리고 ‘直言之士’라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반드시 화가 닥치고 심지어 목숨까지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을 감히 말하고 나아가 그 말을 빙빙 둘러서가 아니고 직접 말하는 윤선도의 행동은, 성격과 기질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보다는 많은 고심과 용기 그리고 신념 속에서 나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러한 그의 모습과 행동은 바로 ‘비판적 지식인’의 모습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윤선도는 폐모론과 甲戌量田, 북벌정책과 예송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상소 등의 방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개진하였다. 나아가 자신에게 화가 닥치고 심지어 목숨까지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는 개의치 않고 직언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의 바탕에는 尊君의식과 權臣에 대한 비판의식, 安民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윤선도의 교유관계는 넓지 않으나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윤선도처럼 유배를 간 인물들과 주고받은 시문, 윤선도처럼 權貴에 아첨하지 않고 직언?감언을 한 인물들을 다룬 글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벼슬에 연연하거나 권귀에 아부하지 않고 의리에 따라 직언하고 감언할 수 있는 비판적 지식인의 모습, 이는 윤선도가 평생 행동으로 추구했던, 그리고 자신의 글에 담아내려고 했던 것이기도 하였다. 실제 그의 시문 대부분은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자신의 각오를 담아내고 비판적 지식인의 모습을 보였던 인물들과 서로 위로하고, 그러다가 삶을 마친 그들을 추모하고, 그들이 자신처럼 경륜을 다 펼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내용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윤선도는 이러한 비판적 지식인의 역할을 죽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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