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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임형진 (천도교종학대학원)
저널정보
동학학회 동학학보 동학학보 제45호
발행연도
2017.12
수록면
81 - 121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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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12월 1일 [제국신문]에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는 이른바 대고천하를 하면서 다시 역사의 전면에 부각된 손병희는 본격적인 문명개화운동을 전개하였다. 동학을 근대적인 종교인 천도교로 변화시켰고 언론출판운동을 통한 의식고양과 의식개혁을 진행하였으며 학교운영을 통한 교육입국이 기치를 높이 세운 것이다. 그러나 1910년 일본에 의한 강제병탄은 천도교의 또 다른 시련이었다. 천도교는 이 시련 앞에 굴하지 않고 기미년에 이르면 전국적으로 300만 교도를 형성할 정도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이는 전적으로 손병희의 리더십과 함께 일제의 압제에 대한 대안적 희망을 천도교에서 찾은 민중들의 열망 때문이었다. 1919년의 3.1독립혁명은 이러한 민중의 열망이 분출된 돌파구였다. 전국적으로 200만명 이상의 인원이 참석하였고 해외 각지에서도 한국인이 있는 곳이라면 장소를 불문하고 한국의 자주독립을 주장하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만세시위가 전개된 곳이 경기도 수원지역이었다. 수원지역은 풍부한 농수산물의 집결지였기에 일찍이 저항의식 역시 남달랐던 지역으로 어느 지역보다도 교육열이 높았고 그만큼 지식인충이 많았었다. 특히 천도교, 개신교 그리고 유림세력의 연합이 이루어지고 농민과 상민, 노동자, 학생 그리고 심지어는 기생들까지 시위에 참여하는 전 민중주의적인 시위를 전개한 지역이었다. 그에 따른 일제의 보복행위도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정조시대 그의 개혁정치로 만들어진 도시 수원에서 가장 개혁적인 동학 천도교가 한 때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무엇보다도 정조가 꿈꾼 세상이 결코 동학 천도교가 이상한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화합과 개혁 그리고 사람을 하늘처럼 대하는 세상이 그것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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