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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미경 (제주대학교)
저널정보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탐라문화 탐라문화 제68호
발행연도
2021.11
수록면
5 - 42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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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확인된 한반도 전방후원분은 영산강유역을 중심으로 한 호남지역에 축조되었다. 연구 결과 전방후원분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를 전후로 한 짧은 기간에 한정되어 축조되었으며, 영산강유역 사회의 중심지를 제외한 외곽에 1~2기씩 분산되어 분포한다. 또한 고분의 매장시설과 부장품에 왜의 요소 외에 백제, 가야 그리고 재지적 요소도 함께 확인되는 등 여러 계통의모습이 확인되었다. 전방후원분이 축조되던 시기 영산강유역 사회는 복합성, 다양성을 가진 공간이었고, 백제의 영역화가 진행되며 간접지배에서 직접지배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많은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전방후원분 피장자의 성격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혼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본고에서는 전방후원분 피장자의 성격을 바라보는 견해들을 정리하고, 크게 영산강유역 재지수장설과 왜인설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각각의 견해들은축조된 시기, 분포, 계보에 대해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전방후원분이라는 묘제와 다양한 계통의 출토유물을 각자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설명하였다. 백제의 영산강유역 직접지배 시기와도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다. 백제는 웅진 천도 이후 국력이 쇠퇴하였으나 점차 남부지방으로 영역을확장하며 한강유역 상실을 만회하였다. 동성왕의 무진주 친정 기록으로 보아도 당시 이 지역에서 백제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백제의 영유화가 진행되던 상황과 백제와 왜 그리고 영산강유역 재지세력과의 삼각관계 속에서 전방후원분의 출현과 피장자의 성격을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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