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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남종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저널정보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동양예술 제36호
발행연도
2017.8
수록면
55 - 79 (25page)
DOI
http://dx.doi.org/??10?.19078/??ea?.201?7?.?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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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방(敎坊)’은 궁중 속악(俗樂)의 교습을 담당한 악무 기구로, 당나라 초기에 황실의 부속 기구로 설립되어 청대까지 연향악무(宴饗樂舞)와 성쇠를 함께 하였다. 당나라의 교방은 동아시아 속악 기구의 성립과 운영에 제도적 토대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것의 성립과 변천에 대한 면밀한 이해는 참고가 된다. 당대 교방의 설립과 변천에 대해서는 정사(正史)의 기록에서 대략을 알 수 있지만 기록이 소략하고 의미가 모호하기 때문에 1960년대 초에 일본과 중국에서 현대적 연구가 시작된 이래로 여러 가지 이설이 나왔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방’은 악무 교습 기구를 가리키는 고유한 명칭처럼 사용되었지만 본래는 각종 ‘교습소’, ‘양성소’를 가리키던 일반적 의미에서 나온 것이다. 둘째, 교방은 당나라 고조(高祖) 때에 처음 설립되었다고 하지만 수나라 양제(煬帝) 때에 ‘설방교악(設坊敎樂)’한 일이 사실상 교방의 효시가 된다. 셋째, ‘내교방(內敎坊)’은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내교지방(內敎之坊)’과 ‘내지교방(內之敎坊)’을 뜻하는 것으로 다르게 사용되었다. 넷째, 현종(玄宗) 때의 내교방은 고조(高祖) 때의 내교방을 이전한 것인지 신설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그 직능이 아악(雅樂)의 교습에서 속악(俗樂)의 교습으로 바뀌었고, 편제(編制) 또한 확대되어 신설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섯째, 현종이 외교방(外敎坊)을 별도로 설립한 것은 속악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급증한 데 따른 대응책이자 악무 관리의 전문화를 위한 조치였다. 이는 태상시(太常寺)가 아악을 전담하고 교방은 속악을 전담하는 이원적 체계의 시작이었다. 여섯째, 장내교방(仗內敎坊)의 실체에 대하여 내교방의 후신으로 보는 입장과 고취서(鼓吹署)에 소속된 별도의 기구라는 주장이 맞서고, 여기에 당나라 후기에 외교방과 통합되었다는 합서설(合署說)도 제기되어 있다. 1960년대 이래로 제기된 이런 논란이 여전히 풀리지 않는 데는 관련 기록의 미비가 일차적 원인이기는 하지만 문화대혁명에 따른 중국학자들의 연구 단절도 한 요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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