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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상준 ((재)불교문화재연구소)
저널정보
동악미술사학회 동악미술사학 동악미술사학 제17호
발행연도
2015.6
수록면
675 - 699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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塔碑는 신라하대부터 龜趺?首 형식으로 조성되기 시작해 12세기 전반까지 그 형식을 유지해 왔다. 고려후기에는 전통을 계승한 귀부이수 형식의 탑비를 계속해서 조성하는 한편 새로운 형식이 채용되고 외래 양식이 유입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진다. 고려후기에는 20여기 이상의 탑비가 건립되었지만, 현재 전하는 것은 9기 정도이다. 또한 <월남사 진각국사비>가 조성된 1250년부터 <회암사 선각왕사비>가 조성된 1377년까지는 전하는 예가 극히 제한적이어서 공백기에 가깝다. 고려후기의 초반에 해당하는 12세기 말~13세기 초에는 전통양식을 계승한 <영국사 원각국사비>(1180년), 방부규수 형식의 <서봉사 현오국사비>(1185년), 귀부규수 형식의 <보경사 원진국사비>(1224년) 등 다양한 형식의 조성 사례가 있다. 이 시기 탑비에 채용된 새로운 형식은 비 받침과 비신만으로 간략하게 구성된 형식으로 귀부이수에 비해 격식이 떨어지는 형식이며, 귀부와 이수를 채용한 탑비의 경우도 전체적으로 조각수법이 떨어진다. 이러한 경향은 장인의 기량문제, 그리고 무신정변 이후 그동안 탑비 조영을 주도하던 교종세력이 쇠퇴하고 불교계의 위상이 떨어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생각된다. 한편 무신정변 이후 불교계는 신앙결사와 최씨정권의 수선사 지원으로 선종이 새롭게 부상하게 되는데, 특히 수선사는 제2세인 眞覺國師 慧諶 때 최씨정권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크게 번창하였다. 이러한 배경하에 조성된 <월남사 진각국사비>(1250년)는 전통적인 귀부이수 형식을 채용하였고, 규모와 조영기량 면에서도 이전 시기의 탑비보다 우수하다. 1377년 조성된 <회암사 선각왕사비>는 귀부이수 형식이지만 비신과 이수가 한 돌로 구성되어 있는 등 우리의 전통적인 귀부이수 형식의 탑비와 큰 차이가 난다. 14세기에는 원 황실과 귀족들에 의해 고려 사찰에 불사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이 과정에서 元 장인들의 직접적인 조영활동도 활발한 시기였다. <회암사 선각왕사비>는 唐代이래 같은 형식을 유지하고 있는 元代 양식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탑비이다. <회암사 선각왕사비>로 대표되는 원대 양식은 이후 왕실 불사와 관련된 사찰의 비석이나 왕릉 및 사대부묘의 신도비 등 소위 주류 비석의 양식으로 자리 잡는다. 반면 신라하대 이후 고려시대까지 우리나라 비석의 주류를 형성했던 귀부이수 형식의 탑비는 고려말 조선초의 시기를 거치며 방부규수 형식으로 간소화되고 조영자체도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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