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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문순희 (인천대학교)
저널정보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열상고전연구 제53호
발행연도
2016.10
수록면
59 - 89 (31page)
DOI
10.15859/yscs..53.2016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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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의 강화도조약을 계기로 개항한 한국은 조약 직후 1876년에서 1885년까지 수신사를 5차례 조사시찰단을 1881년에 한차례 일본에 파견했다. 현재 조사시찰단을 포함한 수신사들이 남긴 사행록은 대략 20종이 확인되며 그 외에도 국가에 제출한 보고서 형식의 기록도 남아 있다. 보고서를 제외한 개인 사행관련 기록은 서술 주체, 서술 시기, 서술 내용 등 각각 기록 성격이 다르다. 이 기록들을 나란히 펼쳐봤을 때 개인마다 사행에 참여하는 태도와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본 논고에서는 일본 사행에 대한 태도, 그리고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 등이 개인마다 어떻게 달랐는지 비교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 1881년 조사시찰단 수행원의 세 기록-강진형의 『日東錄』, 민건호의 『東行日錄』, 송헌빈의 『東京日記』를 텍스트로 선택하였다. 일본사행록을 남긴 세 인물은 동일한 시기 동일한 직책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는데, 세 사행록에는 각각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 차이가 나타났다. 강진형은 가장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수행원으로 도일하여 새로운 문물들을 쉽게 수용하지 못하고 근대에 적응할 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사행록에 개인적으로 방문한 장소나 근대문물, 도시 풍경에 대한 감상 등을 기술하지 않았고 개인적으로 어떤 사물에 특별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유일하게 교류를 나눈 일본인에게 지은 시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가 일본 근대 문물에 부정적이며 문명화된 일본에 적응하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와 반대로 민건호의 경우 견문한 사물에 대한 감상이나 개인 생활을 기록에 남겼는데, 민건호는 일본 생활에 적응하여 다양한 계층의 일본인과 교류하였고 일본 문화와 풍습에 대한 관심이 컸다. 송헌빈은 사행록에 여러 제조법을 필사하는 등 근대 문물과 기술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흔한 필담이나 시문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는 민건호와 달리 일본인과의 사적 교류가 거의 없었거나 이에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처럼 시찰단 수행원은 기존의 사행의 사신들과 비교했을 때 훨씬 다양한 감정과 태도로 일본을 대하고 있었다. 이는 극변하는 시기에 기존의 일본에 대한 인식이 국내에서도 점차 변화하고 있었고, 일본에 파견된 사행원들이 전통적인 대외 사행과는 다른 역할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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