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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원규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연세대학교 강진다산실학연구원 다산과 현대 다산과 현대 제15호
발행연도
2022.12
수록면
231 - 299 (6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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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제시기 강진군의 농업 상공업 등 경제변동과 이를 주도한 지주들의 동향을 다루었다. 강진군에 일본인 지주들이 들어온 것은 다른 지역보다 늦은 1910년 이후였다. 이때 조선실업과 가마타산업에 이어 일본인 상인 지주들이 들어와 활동하기 시작했다. 일본인 농민은 동척이민이 주류이고 대부분 자작이민이다. 정착과정에서 조선농민과 충돌하여 동척이민 반대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강진군은 수전농업 위주이고 지주제가 발달했다. 지주는 대지주도 있지만, 소지주가 압도적이었으며, 농민들은 대부분 이들의 소작농이었다.
일본인 지주과 상인들은 미곡무역 운수업 정미업 교통업 등에 활발하게 진출했지만, 조선인 지주들을 능가하지 못했다. 강진군에 진출한 쇼와전기 조선실업 가마타산업 등 대기업은 외래의 일본인 자본이었다. 농업부분에서도 외래의 일본인 자본가가 주도한 간척사업이 주목 된다. 조선인 대지주들은 일본인 지주 자본가들을 압도하며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첫째, 교육 부분에서는 금릉학교 설립을 비롯하여 민립대학설립운동, 보성전문학교와 세부란스병원 등에 대한 기부활동에 적극적이었다. 둘째, 면장과 면협의회 위원, 금융조합과 수리조합의 조합장 등 일제의 통치기구에 적극 참여하였다. 셋째, 회사형태의 농장 설립 등에서 선도적 역할을 했다. 이들은 운수 창고업, 금융업, 정미업, 주조업 등의 회사를 설립했을 뿐만 아니라 호남은행 전남도시제사 등에 주주나 임원으로 참여하였다. 김충식과 차종채는 경성에서 운수업과 증권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강진군 지주 자본가의 한계는 대체로 농산물의 일차 가공업에 그쳤다는 점이다. 강진군에서 일제의 통치기구에는 1930년대 전반까지는 대지주들이 주로 참여하였지만, 그 후에는 자작농이나 소지주들의 참여가 크게 증가하였다.

목차

Abstract
1. 머리말
2. 강진군의 인구변동과 직업구성
3. 농사개량사업과 상공업
4. 강진군 지주의 유형과 성격
5. 강진군 대지주의 사회·경제활동
6. 강진군내 대지주들의 농외 투자
7.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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