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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차승현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서양사학회 서양사론 서양사론 제155호
발행연도
2022.12
수록면
96 - 127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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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루스 왕조는 믿을 수 있는 귀족들을 활용하여 급격히 팽창해나가는 왕국을 통치했다. 길렐무스 일족의 가장 먼 조상 테오도리쿠스는 카롤루스 마르텔루스의 사위가 된 이후에 측근이 되었으며, 그의 아들 길렐무스는 제국 남부 변경의 지배자로 부상했다. 그러나 길렐무스는 자신의 관직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못했는데, 이는 카롤루스 마그누스가 제국 변방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렐무스의 아들들은 820년대 중반부터 아버지의 유산을 되찾기 시작했다. 특히베르나르두스는 셉티마니아와 에스파냐 변경백령을 지배하는 동시에 루도비쿠스1세의 최측근이 되어 제국의 2인자로 부상했지만 황후와의 간통 혐의로 총애를상실하자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을 진압한 루도비쿠스 1세는 길렐무스 일족이 지배하던 제국 남부에 왕권을 확립하려 했지만, 왕가의 내분으로 인해 군주의 권위가 크게 약화되었기에 베르나르두스와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복권된 베르나르두스는 이전보다 더 많은 영토를 손에 넣었으나 루도비쿠스 1세 사후 서프랑크왕이 된 카롤루스 2세와 충돌하면서 몰락하고 말았다. 이 같은 길렐무스 일족의 흥망성쇠는 9세기 전반 프랑크 왕국 변경의 귀족집단이 중앙권력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으며, 830년부터 시작된 왕가의 내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심한 부침을 겪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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