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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황선익 (국민대학교)
저널정보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동양학 동양학 제91호
발행연도
2023.4
수록면
59 - 74 (1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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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이봉창 의거는 일본 제국주의의 폭주에 경종을 울린 일대 사건이다. 제국주의 심장인 도쿄(東京)에서 일왕[天皇]을 대상으로 했던 만큼 국제적으로도 크게 주목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 내각이 총사퇴해야할만큼 충격적인 ‘大逆事件’이었다. 이봉창 의거가 일어날 무렵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20년대부터 이어진 내부적 분열로 침체되어 있었다. 그러나 상하이 교민사회와 미주 한인 사회의 계속된 지원은 임시정부의 의열 투쟁에 활기를 불러일으켰고, 결국이봉창 의거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한편 미주 한인사회는 내부적 혼란과 경제적 상황 등으로 혼란스런 시기를보내며 장인환과 안중근의 뒤를 잇는 새로운 義烈士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일어난 이봉창 의거는독립운동에 대한 미주 한인의 갈증을 풀어주었다. 뒤이어 윤봉길 의거가 일어남으로써 임시정부에 대한 지지는 물론 독립에 대한 열망을 다시 한번 피어오르게 하였다. 1932년 10월 이봉창 의사가 순국하자, 임시정부 인사들은 물론 멀리 미주에까지 추모 분위기가 번져갔다. 두 달 후 윤봉길 의사가 순국한 후, 이봉창 의사의 추도회는 대체로 이·윤 두 의사에 대한 공동추도회로 개최되었다.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미주 동포들을 한데 모으고, 임시정부에 대한 지지를 다지는 큰 전환점이 되었다. 1930년대 의열 투쟁의 서막을 연 이봉창 의거는 해외 한인사회와의 호흡 속에서 이뤄지고, 또한 반향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한국독립운동의 새로운 분수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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