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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홍성곤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史叢(사총) 史叢(사총) 제108호
발행연도
2023.1
수록면
181 - 235 (5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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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제국의 상대적 쇠퇴가 분명해진 1930년대 ‘영국의 쇠퇴하는 지구적 헤게모니를 더 안정적이고 포괄적인 국제질서로 전환하는 문제’를 고심한 로시언은 체임벌린 총리와는 달리 영미협조 또는 영제국과 미국의 연합을 세계적 위기 해결의 중심축으로 설정했다. 이러한 관점 때문에 로시언은 1932년 제국특혜체제를 수립한 오타와 협정 체결 직후 공직을 사임했다. 또 로시언은 영미협조 관계를 공고화하기 위해 당시 재무부 장관 체임벌린과 외무부의 입장과는 달리 극동에서의 일본의 침략행위에 맞설 것을 주장하고, 관철시켰다. 반면 체임벌린이 독일과의 유화정책을 추진한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가 미국이 지원의 대가로 영제국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지배를 요구할 것이라는 판단에 있었다. 이러한 인식에서 체임벌린은 제국특혜관세의 수정과 미국의 무역과 투자에 제국을 개방하는 것을 포함하는 미국이 지배하는 국제질서를 수용하기보다는 독일과의 유화를 추구했다. 독일 또한 반미주의와 반볼셰비즘을 추구했기 때문에 영국과 독일의 이해는 일치했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스털링 블록과 중・동유럽에서의 독일 블록 사이의 경제적 협력을 촉진하는 영국과 독일의 공동지배를 저지하고자 했다. 이처럼 체임벌린과 로시언이 추진한 두 가지 종류의 유화정책의 결정적 차이는 영국과 독일의 관계를 설정하는 견해의 차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국과 미국의 관계를 정반대의 시각에서 보았다는 데에 있었다. 또 라운드 테이블 그룹이 국제질서를 영국과 미국이 지배하는 해양 세력과 유럽을 지배하는 독일, 소련이 지배하는 영역으로 세력권을 설정하려고 했다는 점에서도 체임벌린의 지정학적 인식과 차별성을 드러냈다. 하지만 로시언은 체임벌린주의자의 세력권 구상보다 더 ‘비현실적인’ 구상을 했다. 그러한 인식의 기저에는 독일의 유라시아 지배를 저지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로시언은 나치 체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함으로써 영국의 전통적인 세력균형 정책을 잘못 적용한 유화정책을 추진하여 중・동 유럽 약소국들의 운명을 독일과의 제국주의적 거래로 파괴하고 결국 영제국도 파괴하는 비극적 결과를 초래했다. 이 점에서 밀너 그룹의 두뇌 집단으로 활약한 올 소울스 칼리지의 젊은 연구자들이 제시한 소련을 포함한 대동맹 전략은 의미가 있는 대안이었지만 수용되지 못했다. 처칠이 제안한 이러한 대안이 1930년대 영국 외교정책으로 채택되었다면 2차 대전을 저지할 가능성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영제국의 몰락도 어느 정도 늦출 수도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체임벌린주의자와 라운드 테이블 그룹이 공유한 반공산주의의 강도에 차이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대동맹 형성을 막은 주요 요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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