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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종수 (순천대학교)
저널정보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불교학리뷰 불교학리뷰 제33호
발행연도
2023.4
수록면
53 - 76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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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권력자들은 고려시대 이래 가지고 있던 불교계의 권력은 빼앗았지만 출가를 금지하거나 백성의 신앙생활을 금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선 전기와 후기 출가자에 대한 사회적 환경이 크게 변했으므로 그들의 신앙생활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16세기 중반까지 국가는 승과를 통해 관인승을 뽑아 사찰을 관리하였다. 그에 비해 16세기 중반 이후 불교는 국가로부터의 공식적인 지원이 끊어진 상태에서 자구적인 노력으로 신앙을 이어갔던 시기로서 출가자들은 양인과 다를 바 없는 신분으로 각종 승역의 부담을 짊어지면서 수행자의 삶을 살았다. 조선 후기 출가자의 신행 생활은 대체로 1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강원에서 경전을 공부한 후 선원에 들어가 하안거와 동안거를 지내거나 염불을 하는 삼문수행을 하였다. 그러나 그 모두가 훌륭한 수행자는 아니었기에 고승(高僧), 선승(善僧), 범승(凡僧) 등으로 분류되기도 했고, 입적 후에는 대종사, 염불인, 좌선인, 판사인, 학도인, 평상인의 지위를 얻기도 했다. 재가신도는 왕실, 양반, 향리, 양인, 노비 등으로 구분되므로 각자의 능력과 지위에 따라 신앙생활에 차이가 있었다. 왕실에서는 원당을 지정하여 신앙생활을 이어갔고, 지식인들은 사경을 통해 공덕이 있기를 기원하였으며, 양인과 노비들은 사찰에서 설행되는 수륙재, 생전예수재, 사십구재 등에 참여하였다. 재가신도의 기도 내용은 대체로 왕생극락과 수명연장이었는데, 칠성신앙과 산신신앙이 수명연장과 구병에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믿어졌으므로 18세기 이후 사찰에서도 칠성각과 산신각을 적극적으로 건립하여 민간 신앙을 수용하였다. 이로써 조선 후기 불교 신앙은 그 범위가 더욱 넓어지면서 더 많은 백성들을 사찰로 유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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