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서울학연구 서울학연구 제93호
발행연도
2023.11
수록면
35 - 73 (39page)
DOI
10.17647/jss.2023.11.93.35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18세기를 거치면서 총융청의 구조와 역할은 크게 변화했다. 17세기 후반까지 총융청은 강화도 등 보장처의 방어를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하지만 18세기 이후 도성수비의 강화와 장용영의 설치로 인한 중앙군제의 개편에 따라 총융청은 점차 북한산성 및 경기 서북부를 중심으로 도성외곽의 방어를 수행하는 중앙군영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구조와 역할의 변화들은 총융청의 재정 운영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총융청의 전체 재정에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는 북한산성 군향곡의 관리 방식 에도 대대적인 재편이 시행되었다.
먼저, 1749년(영조 25) 총융청이 북한산성을 주관하게 된 이후에는 이전 시기 삼군문 등에 의해 할거적으로 관할되던 북한산성 군향곡의 운영을 총융청이 일원화하게 되었다. 이후 북한산성 군향곡은 각 지방 군현단위로 분급되는 이전곡과 개별 민인에게 분급하는 사수미(私受米)라는 두 가지 방식의 환곡으로 운영되었다.
하지만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점차 이전곡에 있어서 분급된 군향곡을 돌려주지 않고 봉류하는 문제와 사수미의 운영에서 보환(保還)과 부환(部還) 등의 부정이 발생하는 문제가 두드러지면 점차 군향곡이 축소되는 문제가 심화되었다. 특히 정조대에 장용영의 창설에 따른 총융청 재원의 상실로 이러한 문제는 총융청 재정 운영에 있어서 더욱 심각한 문제로 비화되었다.
이에 1794년(정조 18)에 비로소 북한산성 군향곡의 운영방식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가 이뤄지게 되었다. 보환과 부환 등의 폐단을 불러온 사수미의 분급을 혁파하고 모든 군향곡을 이전곡으로 운영하게 했다. 이전곡의 봉류로 인한 군향곡의 고갈에 대응해 취모미를 비롯한 다양한 급대 방식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북한산성 군향곡의 운영은 안정화 되었다. 실제로 19세기 초에 이르러 북한산성 군향곡은 과거의 규모를 일정하게 회복할 수 있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18세기 전반 총융청의 북한산성 주관과 군향곡 관리의 일원화
Ⅲ. 18세기 중반 총융청 조직의 확대와 군향곡 운영의 난항
Ⅳ. 18세기 후반 총융청 재원의 축소와 군향곡 운영방식의 개편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151-24-02-088482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