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남석 (당진문화원)
저널정보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충청문화연구 충청문화연구 제32집
발행연도
2024.8
수록면
5 - 38 (3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논문은 해미공립보통학교(현, 해미초등학교) 학생들의 독립만세운동을 연구한 것이다. 특히 만세운동 참여인에 초점을 맞추었다. 해미공립보통학교는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다. 원래 이곳에는 해명학교라는 근대 사립학교가 있었다. 대한제국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조선총독부는 해명학교를 폐쇄하고 공립 보통학교를 세웠다. 그리고 식민지 교육을 시행하였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해미지역에도 만세운동의 열기가 높아졌다. 그 결과, 3월 24일 밤 11시경에 본격적인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주인공은 해미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었다. 이날은 졸업생 고별식이 진행된 날이었다. 10여 명이 참석한 자리에서, 김관룡은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자고 역설하였다. 이어서 김관룡은 학생들을 이끌고 우시장과 면사무소 앞에서 “대한국 독립만세”를 크게 외쳤다. 이들은 모두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고, 주동자 4명은 태형 90도 이상 징역 1년의 옥고를 치렀다. 나머지 10여 명의 학생도 태형 90도와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그 결과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7명이 대통령 표창 이상의 서훈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도 서훈을 못 받은 분은 8명에 달한다.
해미 독립만세운동은 여러 가지 뜻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첫째, ‘학생’이 계획하고 추진한 만세운동이었다는 점이다. 다양한 직군의 직업자가 참여하였지만, 결국은 해미보통학교의‘졸업생’과‘재학생’들로 정리되었다. 둘째, 해미지역의 한말 국권회복운동을 계승하였다는 점이다. 셋째, 병영도시의 상무정신을 표출하였다는 점이다. 넷째, 만세운동은 치밀한 계획 아래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다섯째, 학생에 대한 일본인 학교장의 억압 사례가 드러났다는 점이다. 일제는 만세운동 참여 학생의 현재와 미래를 옥죄고 억압하였지만, 학생들은 이에 굴종하지 않고 일어나고 또 일어나 싸웠다.

목차

한글요약문
1. 머리말
2. 학교의 설립과 운영
3) 만세운동의 전개 과정
4. 참여인의 현황
5. 만세운동의 성격
6. 맺음말
참고 문헌
Abstracts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151-24-02-0906547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