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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윤정 (한림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한국사상사학 제76호
발행연도
2024.4
수록면
105 - 139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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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헌은 무신집권자로는 처음으로 신종 2년(1199) 시회를 열고, 고종 2년(1215)까지 모두 여섯 차례 시회를 개최한다. 신종 2년 첫 시회를 통하여 최충헌은 1인 집권 체제 구축과 정권의 안정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인로・김극기・이규보 등 무신정권 초기 소외된 문신들을 초대하여 자신이 이전 무신집권자들과는 다른, 문재가 있는 문신들을 우대하는 문신정책을 펼칠 것을 밝혔다. 그리고 초대된 이들은 명종 폐위로 인한 금과의 외교 마찰, 국내 민란 수습 등 최충헌 정권의 안정화에 기여한 바가 큰 조영인・조통 등과 인맥으로 연결된 문신들이었다. 정권이 중반기에 이르는 희종 대에는 모두 세 차례 시회가 개최된다. 그중 희종 원년(1205) 시회는 최충헌 집권 10년째에 열린 것으로, 시회에 급제자부터 현직관리, 원로 유학자까지 폭넓은 인물들을 초대하여 확대된 그의 영향력과 권위를 드러냈다. 희종 3년(1207) 시회에서 최충헌은 이인로・이윤보・이규보・김양경 등 당대 문장으로 이름난 문신들을 초대하여 이들의 글로써 장기 집권에 대한 자신감과 높아진 위상을 표현하였다. 국왕이 참석한 희종 4년(1208) 시회에서 최충헌은 정권의 후계자가 최이임을 알리는 한편, 희종과 함께 문신들로부터 시를 받음으로써 그의 위상이 신하의 자리를 넘어서 국왕과 대등한 위치임을 나타냈다. 최충헌 정권이 후반기로 접어드는 고종 대에는 두 차례 시회가 열린다. 그중, 고종 즉위년(1213) 시회는 최이가 최충헌의 뒤를 이을 무신집권자로서 완전히 자리 굳혔음을 알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열린 고종 2년(1215) 시회에서 최충헌은 폐위된 희종에 대한 조처와 역대 국왕에 대한 예제가 이루어지면서 고종 초 체제 정비가 마무리되었음을 시사하였다. 최충헌은 국왕과 문신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시회를 자신의 1인 집권 체제 구축과 정권안정, 장기 집권 체제 확립, 위상 강화, 후계 구도 확립을 표명하는 자리로 운용하였다. 그는 시회 참석자들에게 관직 임명이라는 포상을 줌으로써 자신이 임명권자임을 끊임없이 확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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