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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민길홍 (문화체육관광부)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324號
발행연도
2024.12
수록면
77 - 102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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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국권을 상실한 후 많은 유림들은 유학의 본질로 돌아가 품성을 기르고 지식을 쌓음으로써 국권을 회복하는 기본을 다지고자 하였다. 이러한 차원에서 정읍에 영주정사(瀛洲精舍)를 세운 박만환(朴晩煥)은 추가로 영양사(瀛陽祠)를 짓고 공자, 주자 등 열두 성현들의 초상을 채용신에게 주문하였다. 채용신은 정읍뿐 아니라 그 이외 지역의 요청에도 직접 방문하여 주자 초상을 그려주기도 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의 유림들은 먼 길을 마다않고 와준 채용신에게 감사하며 전별시를 지어주기도 하였다. 채용신이 그린 주자 초상은 현재 3점 전하고 있다. 문헌기록은 있으나 화면에 관서가 남아있지 않은 정읍 영양사 구장본과 진주 도통사(道統祠) 소장본에 대해서는 화풍 분석을 통해 채용신 초상임을 확인하였다.
기우만(奇宇萬), 최익현(崔益鉉)처럼 의병활동에 참여하거나, 전우(田愚)처럼 유학으로 제자 양성에 매진하던가, 황현(黃玹)처럼 결국 자결을 택했거나 전북 유림들 모두 나라를 위하는 마음의 근본은 같았다. 채용신은 이들 세 그룹에 속한 모두의 초상화를 그렸다. 실제로 초상화는 이들을 따르는 문중과 제자들의 주문에 의해 의뢰된 것이나, 진주 도통사 『유안(儒案)』에 이름이 올라 있는 점, 『석강실기』 기록에 초상화 관련 기록 등을 통해 채용신은 이들을 직간접적으로 지지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이산에 은거하며 저술과 강학에 매진했던 주자의 삶에서 전북의 유림들은 스스로 미래를 도모하고 방향성을 찾았고, 이러한 모색은 채용신이 있었기 때문에 한층 더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1909년 정읍 영양사 건립과 〈주자 초상〉 봉안
Ⅲ. 1914년 진주 도통사 건립과 〈주자 초상〉 봉안
Ⅳ. 초상화를 통한 유학 존숭과 채용신의 수응(酬應)
Ⅴ. 맺음말
참고문헌
References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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