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청소년의 자아 정체감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신앙 정체감 형성을 돕는 부모의 역할을 모색하고, 부모가 조력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교육 모델을 제시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본 연구는 청소년의 신앙 정체감에 대한 문제 제기로부터 시작된다. 청소년의 신체적, 인지적, 정서적 변화들은 자신에 대하여 새롭게 정의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자신에 대한 탐색과 정의, 곧 자아 정체감의 문제는 삶의 이유, 목적, 소속, 관계 등에 대한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물음이며, 과거를 통합하고 미래적 삶의 형식들을 개발하는데 꼭 필요한 과정이지만 선택의 다양성이라는 현대사회의 상황, 한국사회의 과도한 입시 경쟁, 부모들과 교회의 책임성 간과는 정체감 형성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청소년들의 정체감 위기는 단지 개인의 문제에 국한된다고 볼 수 없으며 그것이 확산될 때 심각한 사회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에릭슨은 청소년의 정체감 위기가 개인의 문제인 동시에 사회적 위기이며, 기성세대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정체감 형성을 위해서는 성인들의 도움이 요청되며, 청소년이 접하는 첫 번째 기성세대인 부모와의 관계성 속에서 청소년의 정체감 형성에 대하여 고찰해 보고자 한다.
먼저 청소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청소년기에 나타나는 다양한 모습들은 가정의 위기, 사회적 위기를 초래하지만 그것은 ‘발달과제’ 곧 자신을 새롭게 정의하려는 몸부림이라고 하겠다. 청소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성인들은 조급한 마음을 갖고, 기다리기 보다는 강요하고 통제하므로 자율성의 획득, 자기됨을 추구 하는 청소년들과의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청소년기에 유발되는 부수적 현상들은 정상적 발달 범주에 속하는 정체감 형성의 문제이며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성인의 역할을 모르는데서 갈등, 다툼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에릭슨을 중심으로 정체감 형성의 과제를 규명함으로서 청소년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시도할 수 있다. 에릭슨은 정체감이란 청소년기 보다 훨씬 이전부터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며, 청소년기가 되면 새로운 정체감의 형성이 요청된다고 하였다. 청소년의 정체감 형성은 부모에게서 이탈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이때 과거의 정체감에 대한 통합, 개별성(새로운 정체감)에 대한 추구가 나타난다. 새로운 정체감 형성은 이념에 대한 탐색과 관여를 통하여 이루어지며, 이념이 자기 삶의 핵심가치와 사상체계라면 관여는 탐색된 이념에 참여하는 것으로, 자기 자신과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유보된 자유로운 참여이다. 새로운 정체감에 대한 요청은 청소년의 전인적 변화, 주변 환경의 확대로부터 발생되기에 청소년기 자녀와 부모의 관계는 아동기처럼 독점적이고 일방적인 관계가 될 수 없다. 부모에게는 청소년기 자녀의 이탈을 허용하는 조심스러운 자기 절제, 좀 더 평등한 상호성, 타인과 공동체에 개방된 관계의 형성을 촉구한다. 아울러 청소년기 자녀의 정체감 형성을 지원하는 것은 부모로 하여금 성인중기의 발달과제인 생산성의 획득을 돕기도 한다. 조심스러운 자기 절제, 평등한 상호성, 공동체에 개방된 관계 형성은 부모로 하여금 내 자녀만 아니라 다음세대를 향한 돌봄, 피조세계에 대한 보편적 사랑으로 나아가도록 유도할 수 있다.
둘째 청소년의 자아 정체감과 종교, 신앙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시도하였다. 청소년의 자아정체감에 대한 에릭슨의 접근, 신앙발달단계와 정체감에 대한 파울러의 견해, 기독교적 관점에서 청소년의 정체감 형성을 연구한 캔다 딘, 세 학자의 진술을 비교 분석함으로서 신앙 정체감에 대한 정의, 형성과정 그리고 부모의 역할에 대하여 모색 하였다. 세 학자는 종교, 신앙에 대한 관점을 달리하지만 종교, 신앙이 청소년의 정체감 형성의 근거가 되며 이념 형성과 관여, 통합을 돕는다는 공통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념은 신뢰할만한 타자와의 관계로부터 시작되며, 관여를 위해서는 신앙 공동체의 도움이 요청된다. 청소년의 이념 형성과 관여는 자율적으로 발생하는 것이기에 부모는 자기 자신을 제한하는 동시에 공동체를 형성, 연계함으로서 이를 지원할 수 있다. 신앙은 정체감의 근거가 되므로 정체감과 신앙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기 삶을 인도할 궁극적 목적과 방향을 추구하는 면에서 정체감의 위기는 그 자체가 신앙적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청소년의 신앙 정체감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환경은 부모, 삼위일체 하나님, 성인 보증인으로서의 교회이다. 따라서 부모는 청소년의 신앙 정체감의 형성 과정을 지원하기 위하여 교회와 연대할 필요가 있겠다.
자아정체감과 신앙 정체감에 대한 논의에 비추어 청소년의 신앙 정체감 형성을 돕는 부모의 역할을 규명하고, 부모교육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청소년기 자녀를 위한 부모교육이 부재하는 것은 아니나 청소년기 자녀의 신앙 정체감 형성에 초점을 둔 부모교육이 필요하므로, 그에 합당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려고 한다. 새로운 부모교육 모델은 청소년의 신앙 정체감 형성을 돕는 부모의 역할에 기초한다. 청소년의 신앙 정체감의 형성 과정은 이탈, 이념 형성, 관여이며 이를 돕는 부모의 역할은 이탈을 존중하는 거리두기, 이념 형성에 동참하는 공감적 교류, 관여를 지원하는 신앙 공동체 세움이다. 부모는 청소년기 자녀가 온전한 자신이 될 수 있도록 자기를 제한·성찰하고, 공감적 교류를 통하여 신앙을 전수하며, 신앙 공동체와의 연계를 통하여 관여의 장을 마련할 수 있다. 부모의 세 가지 역할, 자기제한, 공감적 교류, 신앙 공동체 세움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향한 태도와 맞물린다. 창조 때 성부 하나님은 온통 자신으로 가득 차 있던 세상에서 자기를 제한함으로서 피조세계를 위한 공간을 내어주셨다. 성부 하나님의 자기 제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사건 곧 체휼로 절정에 이르렀는데 그것은 피조물, 곧 인간에 대한 전적인 공감의 행동이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자기 제한, 공감(체휼)은 교회를 통한 양육과 개방된 우정이라는 성령 하나님의 사역으로 지속되고 있으며, 역사 속에서 실현되어 온 삼위일체 하나님의 피조세계에 대한 자기제한, 공감적 교류, 신앙 공동체를 통한 양육과 개방된 우정을 컴패션(Compassion)이라 일컬을 수 있겠다. 본 연구에서 컴패션은 청소년의 신앙 정체감 형성을 지원하는 부모의 마음가짐, 태도, 행동을 의미한다. 부모의 역할 모델은 피조세계를 품어 오신 삼위일체 하나님이며 부모들이 품어야 할 마음, 본 받아야 할 태도는 하나님의 컴패션이다. 신앙 정체감은 자아 정체감과 마찬가지로 환경 곧 중요한 타자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형성되며 그 대상은 부모, 초월적 타자인 하나님 그리고 확대된 타자로서 신앙 공동체이다. 청소년의 신앙 정체감 형성을 돕기 위해서 부모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계를 대하는 태도를 본받고, 자녀와의 관계 속에서 그것을 실현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 신앙 공동체와 교류하는 환경을 구축해 갈수 있다.
컴패션 모델은 신앙 정체감의 형성 과정에 따라 부모들에게 세 가지 역할을 요청한다. 첫째 거리두기를 요청한다. 거리두기란 부모들이 자기의 영역을 축소하고 자녀의 자율과 경계선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주의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은 자연, 동물, 인간에게 자신의 공간을 양도함으로서 창조자가 되셨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신의 영역을 세계의 창조를 위하여 축소하셨지만 그것은 결코 작아지셨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부모의 거리두기 역시 결코 작아짐을 의미하지 않으며, 청소년의 자율적 이념 형성과 관여를 돕기 위한 것이기에 창조를 위한 물러나기 곧 창조적 퇴진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부모의 물러남은 하나님이 개입하실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고, 부모 스스로에게 성찰을 통하여 자신은 하나님의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두 번째는 공감적 교류이다. 공감적 교류는 부모가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청소년기 자녀와 거리감을 배제하지 않는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피조세계에 공간을 내어주고 통제권을 양도하신 것에 그치지 않고 피조세계의 고통에 동참하고자 성육신 하셨던 그리스도처럼 부모는 청소년들의 사고, 감정, 삶에 공감하면서 신앙을 전수하며, 참된 공감적 교류를 허용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재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공생애 기간 동안 자기 백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셨고, 그들의 고통과 질병에 공감하였다. 그리스도의 공감은 빌2:5-11에 나타난 바와 같이 십자가에서 절정에 달하였으며, 이것이 바로 부모들에게 보여주는 완벽한 공감의 모범이다. 부모들의 공감은 청소년을 수용하고, 의사소통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중재하고, 함께 기도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앙 공동체를 형성 혹은 연계 하는 것이다. 신앙 공동체는 청소년이 탐색한 이념에 관여할 수 있는 안전한 시행착오의 공간이며, 가장 바람직한 공동체는 가정과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들의 이념이 확증, 유지되려면 그들을 지원하는 공동체가 필요하며 그 첫 번째 공동체는 최초의 교회였던 가정이다. 두 번째 공동체는 기독교 확대 가족이라 할 수 있는 교회이며, 교회에는 청소년들을 돕는 친구들, 소그룹 그리고 성인 보증인들이 있다. 신앙 공동체에서 만난 수많은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청소년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으며, 부모 역시 그들을 지원하는 그룹을 만날 수 있다. 신앙 공동에서 수많은 타자들,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교류를 통하여 청소년과 부모 모두 자신의 참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므로 신앙 공동체와 개방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 연구에는 유익도 있고 한계도 있다. 유익한 점은 자녀의 청소년기를 맞아 혼란을 거듭하고, 역할이 모호해진 부모들에게 청소년기 자녀를 위한 부모됨이 무엇인지 알게 하고, 적절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계점은 또래 그룹 보다는 부모의 역할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어서, 또래 그룹의 영향력이 소홀히 다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패션 모델은 부모들로 하여금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와 지나친 통제가 최선의 방법은 아니며, 청지기로서 자녀에게 신앙을 전수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양육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 이를 위해서는 신앙 공동체와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할 것이다. 부모 됨의 길에는 끝이 없지만 청소년기 자녀를 위해서 부모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청소년기 자녀를 하나님과 공동체에 위탁하며, 또한 적절한 부모 됨의 역할이 무엇인지 모색해 갈 수 있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정체감 형성은 청소년들에게 더욱 과중한 부담이 되었으며 부모들은 적절한 지침을 요하고 있다. 부모들의 요청에 힘입어, 한국사회의 다양한 가정의 상황, 청소년의 특성에 적합한 부모교육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들이 더욱 진행되기를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