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위논문
저자정보

홍지수 (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한정숙
발행연도
2016
저작권
서울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이용수2

표지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는 1930년대 중반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가 겪은 변화에 주목하고 그 변화의 성격을 규명하려는 시도이다.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는 1930년에 출범한 “굴라그(ГУЛаг)” 산하의 구금기구로, 1930년대를 지나며 급격히 성장했다. 기존의 연구들은 스탈린 시대에 벌어진 대규모 정치적·사회적 탄압의 맥락 속에서 강제노동수용소를 조명하며, 수용소가 무엇보다도 억압기구 혹은 형벌기구의 기능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소련의 산업화가 심화되던 1930년대 중반 강제노동수용소가 경험한 중요한 변화를 고려하지 않는 한계를 갖는다. 경제적 생산에 요구가 전사회적으로 증대하면서 수용소 또한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규모의 생산 활동을 수행해야 했다는 것이 그 변화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그간의 연구가 주목하지 않았던 수용소의 ‘내부’에서 두드러졌다.
이에 본고는 소련의 대표적인 강제노동수용소인 백해-발트해 산업단지에서 발간된 내부 신문들을 검토하며 1935-36년 수용소의 일상이 생산 활동을 중심으로 재편된 과정을 살핀다. 특히 수용소 신문이 수감자들을 생산성 증진에 매진하는 노동자로 그렸으며 이들의 수감생활을 일종의 공장생활로 묘사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이는 당대의 수용소가 경제적 생산기구로 변모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이다. 1935년도에 발간된 수용소 신문은 수감자들에 대한 ‘재교육’을 도모한다는 이전 시기의 기조와 거리를 두며 수감자들의 생산 활동과 그들이 달성한 ‘생산성’을 핵심적인 주제로 다뤘다. 1935년 말에 시작된 스타하노프운동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했다. 백해-발트해 산업단지는 스타하노프운동에 특화된 신문을 별도로 발간하며 수감자들의 생산성이 수용소의 경제적 역할과 밀접히 결부되어 있음을 강조했던 것이다.
수용소의 실상을 반영하는 대부분의 사료들에 대한 접근이 여전히 어려운 상황에서, 수용소 신문에 드러난 수용소 당국의 수감자관(觀)은 이전까지 간과되었던 1930년대 중엽 수용소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강제노동수용소는 억압기구와 형벌기구, 그리고 생산기구의 영역을 오가며 당대 소련 사회 전반의 변화에 발맞추어 독특한 입지를 구축했던 것이다. 특히 소련 경제의 번영기라고도 불렸던 1930년대 중반, 수감자들을 노동자로 바라보았던 수용소 내부의 담론은 소련 경제와 수용소가 맺고 있던 관계를 새로이 조명할 만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목차

서론 1
Ⅰ. 백해운하의 건설과 인간개조론, 1931-33년 8
Ⅱ. 인간개조론의 퇴조와 생산성론의 대두, 1935년 13
1. ББК의 설립과 수용소 신문의 변화 13
2. 피교육자에서 노동자로 17
3. 수감자들의 교육자에서 당국의 노동자로 20
4. 재교육에서 생산성으로 22
Ⅲ. 스타하노프운동과 생산성론의 강화, 1936년 26
1. ББК의 스타하노프운동과 수용소 신문의 변화 26
2. 수감자-스타하노프노동자의 역할 29
3. 수감자-스타하노프노동자의 지위 32
결론 36
참고문헌 40
Abstract 50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