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18세기에 편찬된 야담집 『天倪錄』과 『東稗洛誦』을 대상으로 각 작품의 서사지향과 서술방식을 고찰하고 초기 야담사의 지형 속에서 두 작품집의 위상을 살펴본 것이다. 지금까지의 야담 연구는 역사·사회주의적 관점에 입각해 작품 속에서 조선후기 사회의 특정한 부면을 간취해내려고 하거나, 일부 모티프만을 중심으로 진행되어온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축적된 연구의 성과가 조선후기 사회와 문화를 보다 입체적으로 재구하는데 많은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야담이 보여주는 다양한 지향과 운동성은 다소 일률적인 해석으로 수렴되었고, 개별 작품집의 문학성과 미학에 대한 탐색은 상대적으로 관심의 영역 밖에 놓이게 되었다. 18세기를 전후하여 등장하기 시작한 새로운 문학양식인 야담이 어떠한 세계관을 기반으로 형성되었으며, 그 미학적 특질은 무엇인가를 밝히기 위해서는 초기 야담집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본고에서는 『天倪錄』과 『東稗洛誦』의 두 작품집을 대상으로 형성의 배경을 밝히고 서사지향과 서술방식의 양 측면을 세밀하게 살펴보는 것을 연구의 과제로 설정하였다. 먼저 두 작품집이 야담이라는 문학場 내에서 점하는 좌표적 위치를 파악한 후, 이들 사이의 시간차를 고려해 史的 연계도 함께 살펴보려고 했던 것이다. 논의의 결과를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Ⅱ장에서는 『天倪錄』과 ??동패락송??이 산생될 수 있었던 배경을 고찰하였다. 그간 야담이라는 새로운 문학 양식의 등장 배경으로는 조선후기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그로 인한 사람들의 경험세계의 확장, 인식의 변모 등이 거시적인 관점에서 논의되어 왔다. 본고에서는 이에 더해 개별 작품집의 형성과 성격에 영향을 미친 보다 직접적인 동인으로 편찬자와 그를 둘러싼 문학적·문화적 환경에 주목하였다. 특히 18세기 야담집은 편찬자 개인의 사상과 경험이 상당히 많이 투영되는데, 이는 전대의 문헌을 그대로 전재하는 경향이 강한 19세기 야담집과 구별되는 이 시기 작품집의 특징이기에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天倪錄』의 편찬자 임방은 노론 벌열 가문의 일원으로서 강한 정치적 정체성을 지닌 인물이었고, 『동패락송』의 편찬자 노명흠은 홍봉한가의 塾師로 평생을 빈한하게 살았다. 이들은 유사한 문학적 환경에 놓여있으면서도 사회경제적 계층차가 두드러지며, 이러한 차이는 두 편찬자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에도 일정하게 영향을 주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天倪錄』은 전대의 필기 잡록류의 서술 전통의 자장 하에 있으면서 편찬자 임방의 개인적 취향과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傳奇·筆記류의 독서 경험에 영향을 받아 독특한 개성을 지닌 작품집이 되었다. 그를 둘러싼 동호인적 집단의 好奇 취향도 『天倪錄』의 내용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반면 『동패락송』은 이야기판에서의 구연 전통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작품집으로 구연의 과정이라는 필터링을 거쳐 편찬자의 개성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신 더 많은 사람들의 기호를 만족시킬 수 있는 작품은 『동패락송』이었을 것이라 추정하였다. 이어 『天倪錄』과 『동패락송』이 일상의 어떤 부면에 주목하고 있는가를 각 작품집의 서사지향을 통해 확인해보았다. Ⅲ장에서는 『天倪錄』의 서사지향과 서술방식을 살펴보았다. 『天倪錄』에는 17세기를 전후한 전란, 자연재해, 전염병 등에서 비롯된 사회적 불안과 혼란의 흔적이 투영되어 있다. 사람들은 전염병의 원인을 귀신으로 돌려 그것을 해명하고 해명의 과정에서 불안을 해소하려고 하기도 하였으며, 피할 수 없는 전란과 자연재해의 폭력을 일시적, 개인적으로나마 피해보고자 하는 소망을 이인의 존재에 기탁하기도 하였다. 편찬자 임방 또한 이러한 서사주체의 기대에 동의를 표하며 세계의 안정화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天倪錄』의 특징적인 면모 중 하나가 祖靈 서사의 증가인데, 이들은 성리학적 주체의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해주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무속적 사유기반의 잔재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상태의 조령을 임방은 효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이념의 내부로 포섭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불안을 서사적으로 즐기려는 지향 또한 보이는데, 서울 변두리의 흉가 귀신이나, 변경에 출몰하는 물괴에 대한 이야기는 감각적으로 대상과 상황을 묘사함으로써 생생함을 전달하고 일종의 공포쾌락의 기제를 발동시키는 이야기로 분석되었다. 이때 물괴의 경우 심리적, 거리적으로 離隔되어 있을 때, 공포를 통해 은근한 스릴과 쾌감을 맛보려는 태도가 나타난다. 이인이나 선계의 존재를 피화와 연결시키지 않고 그 자체에 대한 화려한 묘사와 서술을 통해 즐기고자 하는 각편도 오락적 향유라는 측면에서 이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여성이나 열등한 남성, 오만한 관리에 이야기들은 이들 존재를 통해 남성 동류집단에게 경계와 교훈을 주거나 집단내부의 단속을 시도하는 서사임을 밝혔다. 『태평한화골계전』 같은 전대의 패설에서부터 이러한 이야기의 전통을 찾을 수 있는데, 이를 통해 『天倪錄』의 주 향유층이 사대부 남성집단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Ⅳ장에서는 『동패락송』의 서사지향을 살펴보았다. 『동패락송』에서 가장 강렬하게 나타나는 것은 결핍의 상태와 그것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망이다. 부와 출세, 여성에 대한 통속적 욕망의 추구 과정 자체가 서사의 핵심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이는 때로는 우연에 기대어서, 때로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노력을 통해 성취된다. 부를 추구하는 경우, 그 방법이 현실적인 경우와 환상적인 경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농사나 장사를 통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부를 추구하는 경우, 그 부는 막대하며 영속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환상적인 방법으로 성취한 부의 경우, 부의 규모는 작거나 성취는 지연된다. 이는 『동패락송』이 보다 현실적인 쪽으로 서사의 지향을 이동시켜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부 자체만을 추구하는 이야기와 부를 성취한 이후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관심을 갖는 이야기 등 부에 대한 서사적 담론이 『동패락송』을 통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결연을 통해 결핍을 해소하고 안정적인 삶을 누리려는 욕망 또한 중요한 지향이다. 이때 결연은 때로는 천정에 의한 기이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때로는 능동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노력의 결과로 제시되기도 하였다. 사실 천정과 운명의 개척은 서로 반대되는 지향점을 보이는 것이며, 한 작품집 내에 이러한 양가적 지향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은 모순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의 지향으로 수렴되지 않으며 양가성을 지닌 이야기를 모두 포괄하여 삶의 총체성을 드러내주는 것이 바로 『동패락송』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동패락송』의 각화를 통해 상층과 하층을 아울러 보편도덕의 감화가 미치는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층의 인물이 도덕률을 실천하는 이야기는 그 편폭이 길지 않다. 인물의 한 가지 행동을 부각시켜 그를 통해 도덕이념을 실현하는 장면을 제시하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그 인물이나 집안에 어떠한 보답을 가져다 주었는가를 간략하게 기술할 뿐이다. 왜냐하면 상층의 입장에서 인, 의, 예, 신 과 같은 도덕이념은 당연히 지니고 있는 것, 혹은 지니고 있어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기하거나 주목할 만한 거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념의 실천이 현실적인 보답-가문의 번성이나 막대한 부의 성취로 이어진다는 것은 통속화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하층의 인물이 보편도덕을 준수하는 이야기는 서사의 편폭도 길고, 이야기의 흥미성도 더욱 강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 인물이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된 계기도 서술되어야 하고, 조력자나 그 인물의 행동을 평가하는 다른 인물도 개입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층의 인물에게도 그러한 도덕이념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상층의 입장에서 신기하고 기특한 일, 기억하고 기록할 만한 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층의 보편도덕은 더욱 강조되어 나타난다. 이는 18세기 이후 예교가 강화되고 아래 백성들에게까지 예치의 세목들이 전달되고 지켜지기를 바랐던 이념적 배경과 사상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전 계층에서 보편도덕이 감지된다는 것은 세계에 대한 안정에의 기대와 그 낙관이 전제되어있다. 이처럼 『천예록』과 『동패락송』의 서사지향과 서술방식은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데, Ⅴ장에서는 이를 종합하고 서술방식의 거리와 야담사적 위상을 살펴보았다. 우선 제명인 “天倪”와 “洛誦”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이 둘은 모두 『장자』에서 유래한 말로 두 야담집의 특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천예”는 치언과 연결되는데, 이는 시비분별을 가릴 수 없는 말로 불온한 존재에 대한 담론의 장인 『천예록』에 걸맞는 제목이다. 즉 『천예록』은 공식적으로는 말하지 않는 혹은 말할 수 없는 비정형적이고 다발적인 체험의 기록이며, 임방은 이를 모아 기록함으로써 천예로 조화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천예록』은 그 일을 경험한 개별자의 목소리를 강조하는 ‘누구의’ 서사가 된다. 반면 “洛誦”은 道가 전해져 오는 단계 중에 입으로 말하는 것을 의인화한 것이다. 결국 『동패락송』은 락송에 “東稗”라는 단어가 붙여진 것이니, 東國의 다양한 일을 구연 전송한 것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우선 이야기판이라는 구연의 장을 통과한 이야기라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나 홀로 저술이 아니라 구연을 거친 이야기는 다수의 사람들의 필터링을 거치게 된다. 어떤 이야기는 사람들의 갈채를 받고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내겠지만 또 어떤 이야기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 차례 반복되는 이러한 구연의 과정에서 구연자의 사고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일정한 조정을 거치게 되며, 이야기도 그에 맞게 다듬어지게 된다. 청자의 계층성과 그들의 요구에 따라 이야기가 통속화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에 따라 ??동패락송??의 서사주체는 익명화되고, 점차 ‘누구의’ 서사가 아닌 ‘누구나의’ 서사로 변모해간다. 서사주체의 자리를 비워놓음으로써 누구나 그 자리에 자신을 대입하여 서사가 보여주는 통속적 욕망을 꿈꿔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같고도 다른 두 작품집의 특성은 초기 야담 형성기의 지형을 잘 보여준다. 이후 『天倪錄』의 서사지향과 서술방식의 특징은 家乘을 통해 임매의 『잡기고담』으로 일부 이어지는 듯하나 계승의 범위가 좁다. 반면 『동패락송』의 그것은 이희평의『계서잡록』을 통해 『기문총화』 계열로 퍼져나가면서 야담의 큰 줄기를 형성하게 되는데, 본고는 그 양상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논증하지 못했다. 이들 작품집에 수록된 각화가 후대 야담집으로 전개되어가는 면모에 대해서는 후속 연구를 통해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목차
Ⅰ. 서 론 11. 연구 목적 및 필요성 12. 선행 연구 검토 53. 연구 대상과 서술의 구도 13Ⅱ. 『天倪錄』과 『東稗洛誦』의 형성 배경 201. 『天倪錄』의 형성 배경 211) 임방의 생애와 정치적 태도 212) 필기·잡록류의 계승과 변용 282. 『東稗洛誦』의 형성 배경 321) 노명흠의 생애와 현실적 처지 322) 소비사회로의 변화와 『동패락송』 37Ⅲ. 『天倪錄』의 서사지향과 서술방식 431. 暴力과 不安의 형상화 441) 전염병의 可視化와 불안의 해소 452) 異人의 존재와 避禍의 소망 563) 祖靈의 등장과 합리적 이해 622. 物怪의 재현과 仙界의 지향 671) 離隔된 공포의 오락적 향유 672) 仙界의 감각적 재현과 지향 783. 鑑戒와 感動의 서사화 841) 남성 동류집단 내의 鑑戒와 웃음 862) 이상적 여성상을 통한 共鳴과 感動 99Ⅳ. 『東稗洛誦』의 서사지향과 서술방식 1091. 결여의 해소와 安樂의 희구 1101) 빈곤 해소의 현실적 방법 1112) 결핍 충족의 환상적 방법 1262. 奇緣의 실현과 운명의 개척 1371) 奇緣을 통한 안정적 삶의 기반 구축 1382) 妻妾의 知鑑에 의한 운명의 개척 1443. 도덕 이념의 보편화와 서사적 구현 1531) 상층의 도덕 이념과 서사적 구현 1532) 基層化된 도덕 이념의 서사적 구현 160Ⅴ. 『천예록』과 『동패락송』의 거리와 야담사적 위상 1701. “天倪”와 “洛誦”의 의미 1702. 『천예록』과 『동패락송』의 야담사적 위상 182Ⅵ. 결 론 186□ 참고문헌 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