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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위논문
저자정보

이강원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송양섭
발행연도
2020
저작권
고려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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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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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국왕을 위시한 정부 기관이 밀집된 都城의 방어는 국가의 흥망 자체를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였다. 이와 관련해 도성을 둘러싼 경기 지역의 방어는 도성 방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주요한 요소였다. 특히, 경기 지역 중에서도 임진강을 중심으로 한 경기 서북부 지역은 가장 주요한 간선도로인 의주로의 축선 상에 위치해 그 중요성이 더 컸다.
조선 왕조 정부는 오랜 기간에 걸쳐 경기 서북부 지역에 관방시설을 마련하고 그를 담당하는 군사기구를 조직하는 방식으로 방어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는 특히, 18세기를 전후하여 유사시 왕실과 조정이 주요 도로망에서 떨어진 保障處로 대피하여 전쟁을 지휘하는 보장처 중심의 방어전략이 점차 퇴조하고, 도성을 사수하려는 도성 중심 방어전략이 강화되는 흐름 속에서 활발히 이루어졌다.
도성 방어의 효과를 증대하기 위해 개성 인근 지역, 임진강 지역, 도성 외곽 지역 등 경기 서북부 지역 각 지점의 의주로상의 요충지에 대한 관방시설이 설치되고 군제가 개편되었다. 개성 인근 지역에는 관리영을 중심으로 여현과 백치 등의 요충지에 여러 진보 시설이 마련되었고, 도성 외곽 지역에는 북한산성과 탕춘대성이 건설되었고 총융청 소속의 管城所 병력이 그 방어를 주관하게 하는 방어체제가 마련되었다.
이러한 배경 위에서 영조대 중후반 균역법의 실시로 일련의 재원이 확보됨에 따라 임진강 이남에 임진진과 장산진 등의 관방시설과 군사조직을 정비하고, 장단에 위치해 있던 경기 우방어영을 파주로 옮긴 것은 18세기 경기 서북부 지역 방어 체제 정비를 마무리 짓는 것이었다. 우선, 균역법 실시 과정에서 마련된 新造·改?價와 兩西添餉米 등의 재원을 활용해 영조 30년(1754) 임진강 이남의 주요 요충지인 임진 일대에 임진진과 장산진 등 진보 조직이 정비되었고 관련해 돈대 등의 관방시설이 건설되었다.
임진강 이남 지역에 일정한 군사조직과 관방시설이 마련됨에 따라 해당 지역 방어를 책임지던 경기 우방어영의 편제에 대한 개편작업이 이어졌다. 임진강 이북인 장단에 위치해 있던 방어영을 임진강 이남인 파주로 이설하되, 장단 도호부사로 하여금 총융청의 後營將을 겸하게 하는 방식으로 임진강 남북 지역 방어의 완결성을 높이는 조치가 이어졌다. 또한, 이 과정에서 별효사와 步軍을 비롯해 새롭게 마련된 파주 방어영의 각종 병력은 파주목을 獨鎭으로 삼는 방식을 통해 마련하였다. 파주 소재 良丁 중 기존에 타기관에 소속되었던 인원들을 방어영으로 전속한 것이다.
이상의 조치에 따라 임진강 남북을 아우르는 방어 전략의 재편이 마무리되었다. 그 결과, 임진강 이북 지역은 총융청 후영장인 장단 도호부사의 지휘 하에 장단, 삭녕, 마전, 연천의 4개 읍의 병력이 고랑포 등을 거점으로 삼아 방어하고, 임진강 이남 지역은 파주 방어사의 지휘 하에 파주, 고양, 교하, 적성 4개 읍의 병력이 임진진과 장산진을 거점으로 삼아 방어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개성에서부터 도성으로 향하는 주요 교통로에 대한 중첩적인 방어망이 형성되었고 유사시 보다 효과적인 도성 방어가 가능해 졌다. 먼저 개성 인근 지역의 경우 관리영이 대흥산성, 백치진과 여현진 등의 요충지를 거점으로 삼아 방어하게 되었다. 임진강 지역의 경우 총융청 후영장을 겸하는 장단 도호부사 휘하의 병력과 파주 방어영의 직속 병력이 각기 임진강 남북 지역을 고수하는 방어체제가 확립되었다. 끝으로 의주로를 따라 도성으로 진입하는 최종 방어선인 북한산성과 탕춘대 일대에 대해서는 총융청 관성소의 병력이 방어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이는 이전시기 주요 도로망에서 떨어진 보장처 혹은 산성 중심의 방어 전략이 단선적인 방어선의 형성에 그친 점을 극복하여, 경기 서북부 지역 전체에 중층적인 방어지대를 형성해 보다 입체적인 지역 방어를 가능케 한 것이었다. 또한 이는 궁극적으로 도성 외연의 방어력을 크게 제고해 당시 진행되던 도성 수비체제의 확립에 크게 이바지한 것이었다.
끝으로 이처럼 18세기 정비된 경기 서북부 방어체제는 요충지에 관방시설을 마련하고 군사와 행정이 통합된 유수부를 중심으로 한 경기 지역 방어체제의 개편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으며, 19세기 후반까지 그 기본 편제가 유지되며, 100여년 이상 지역 방어 임무를 수행하였다.

목차

1. 머리말 1
2. 장단 우방어영의 창설과 의주로 방어의 정비 4
3. 임진진?장산진 설치와 임진강 지역의 군비 강화 15
4. 장단 우방어영의 파주 이설과 지역 방어체제의 재편 27
5. 맺음말 39
부록 42
參考文獻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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