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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위논문
저자정보

신지아 (동국대학교, 동국대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임영애
발행연도
2021
저작권
동국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이용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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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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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1703년 작 구례 화엄사 각황전 삼불사보살상의 구체적인 조성배경 및 주체를 밝혀내고, 도상이 가진 의문점에 대해 알아보았다. 또한 작품을 조성한 승려 장인 집단인 색난파의 전 시기에 걸친 양식을 검토하며 각황전 삼불사보살상이 그 흐름에 있어 위치한 자리를 재조명해보았다. 화엄사는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로 주불전인 대웅전보다 더 큰 외형을 가진 각황전에는 1703년 작 각황전 삼불사보살상이 그 규모에 걸맞은 모습으로 봉안되어 있다. 보기 드문 칠존의 형식으로 석가불, 다보불, 아미타불의 불상과 문수, 보현, 지적, 관음의 보살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왕실과 관련된 불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화엄사의 특수한 후원 배경 속에서 작품은 숙종의 왕비인 인현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뒷받침하듯 발원문에는 왕후의 본관인 여흥 민씨를 중심으로 당대 사대부 집안 인물들이 서로 관계하고 있음을 새롭게 밝혀냈다. 이를 둘러싸고 있는 사상적인 현상에 대해서도 후대의 기록을 통해 자세히 알아보았다. 작품은 비로자나의 화신으로서 불보살이 강림한 것이다. 즉 영산회 의식집인 『오종범음집』의 도상을 차용했지만 이를 화엄사상으로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대치된 도상인 지적보살에 대해서는 명확한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당시 호남지역 속 일련의 흐름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함께 시사했다. 각황전 삼불사보살상을 만든 색난파의 작품은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반에 걸쳐 얼굴을 중심으로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인다. 전반적으로 네모난 얼굴과 가늘고 긴 눈, 이마에서 돌출되어 있는 코 등이 공통이지만, 1703년을 기점으로 이전과는 다른 미감을 보인다. 따라서 실제적인 조성에 있어 색난보다는 다른 인물의 영향이 크게 미쳤음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이에 승려 장인 일기를 꼽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각황전 삼불사보살상은 색난이 가진 절대적인 영향력과 함께 조각승 개인의 일부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목차

Ⅰ.머리말 1
Ⅱ. 화엄사 각황전과 三佛四菩薩像의 조성배경 4
Ⅲ. 화엄사 각황전 三佛四菩薩像의 특징 28
1. 각황전 三佛四菩薩像 현황 28
2. 각황전 三佛四菩薩像의 도상 40
1) 삼불상: 석가불, 다보불, 아미타불 42
2) 사보살상: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적보살, 관음보살 54
Ⅳ. 조각승 충옥, 일기의 역할과 각황전 三佛四菩薩像의 의미 102
Ⅴ. 맺음말 112
【참 고 문 헌】 115
【부 록】 133
【ABSTRACT】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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