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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지아 (불교중앙박물관)
저널정보
한국미술사교육학회 미술사학 美術史學 第44號
발행연도
2022.8
수록면
123 - 149 (27page)
DOI
10.14769/jkaahe.2022.08.4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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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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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각황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은 1703년 조각승 색난의 주도하에 조성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작품의 구체적인 조성배경 및 주체를 밝혀내고, 작품을 조성한 승려 장인 집단인 색난파의 전 시기에 걸친 양식을 검토하며 이 작품이 그 흐름에 있어 위치한 자리를 재조명해보았다.
화엄사는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로 웅장한 각황전 내 높고 장대한 수미단 위에는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사보살입상이 그 규모에 걸맞은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보기 드문 칠존의 형식으로 석가불, 다보불, 아미타불의 불상과 문수, 보현, 지적, 관음의 보살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불상은 숙종의 왕비인 인현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뒷받침하듯 「발원문」에는 왕후의 본관인 여흥민씨를 중심으로 당대 사대부 집안의 인물들이 서로 관계하고 있음을 새롭게 밝혀냈다. 화엄사는 왕실과 관련된 불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찰로 이러한 특수한 후원 배경은 왕실 조성 발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충분한 상황적 근거가 되었다.
작품을 만든 색난파의 불상은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반에 걸쳐 얼굴을 중심으로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인다. 전반적으로 네모난 얼굴과 가늘고 긴 눈, 미간에서 돌출된 코 등이 공통이지만 1703년을 기점으로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보인다. 따라서 실제적인 조성에 있어 색난보다는 다른 인물의 영향이 크게 미쳤음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이에 조각승 일기를 꼽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구례 화엄사 각황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은 색난이 가진 절대적인 영향력과 함께 조각승 개인의 일부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발원문」을 통해 본 왕실과의 관련성
Ⅲ. 〈각황전 불상〉과 색난
Ⅳ. 조각승의 역할과 〈각황전 불상〉의 의미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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