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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81호
발행연도
2006.3
수록면
127 - 155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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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후반 발해와 일본의 관계에 대한 기왕의 연구는 일본의 관점에서 정치중심의 외교에서 경제중심의 외교로 전환하였다고 보는 데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즉 石井正敏을 비롯한 일본학계의 연구는 764년 일본의 신라침공계획의 무산을 계기로 발해가 번국의 종속적 자세를 감수하면서 대규모 사신을 일본에 파견한 것은 경제적 목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문왕대 후기에 해당하는 771년 이래 779년의 단기간에 발해가 5회의 사신을 일본에 파견하였고 그 규모도 180명에서 300명이 넘는 대규모였다. 특히 발해사가 지참한 국서의 내용과 관련하여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을 야기하는 등 발해는 시종 일본에 대하여 고압적인 외교자세를 견지하였다. 이렇게 8세기 후반 외교형식을 갖춘 대규모의 사신을 파견하였음은 발해의 대일본외교의 목적과 양상이 변화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요컨대 8세기 후반 대륙의 정세변화와 발해의 국가적 성장이라는 대내외적 환경의 변화로 인하여 발해는 일본보다 우월한 외교적 자세를 유지하면서 문화적 의례외교를 추진하는 동시에 대규모의 교역에 있어서도 주도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 8世紀 後半 國際關係의 再編과 渤海
Ⅲ. 文王代 後期 對日外交의 變化와 日本의 態度
Ⅳ. 來着地 利用 與否와 兩國交易의 實態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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