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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제정치학회 국제정치논총 國際政治論叢 제42집 제4호
발행연도
2002.12
수록면
191 - 215 (25page)
DOI
10.14731/kjir.2002.12.42.4.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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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20세기초는 한반도 주변의 중국과 일본, 러시아가 각축을 벌이다가 두 개의 중요한 전쟁이 일어났던 시기이며 한국의 운명이 결정되었던 중요한 시기였다. 1894년 영국이 서울을 중심으로 한 청ㆍ일간의 남북분할안을 제시했지만 한반도를 독점하려는 일본에 의해 거절되었으며 청일전쟁은 발발했다. 1896년 일본의 야마가타는 러시아의 로바노프에게 39도선 근처인 대동강변 분할안을 먼저 제안했으며 이 안에 대해 러시아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38선 근처의 서울을 경계로 한 분할안을 재차 제안 했다. 일본은 러시아에게 먼저 한반도의 3분의 1을 내어준다고 했다가 러시아가 소극적으로 대응하자 반분까지도 제안했던 것이다. 한반도 남부를 요충지라 생각했던 러시아는 일본의 제안을 우회적으로 거절하여 常時的 분할은 실현되지 않았으나, 양국은 비상시 남북분할에는 합의했다. 일본은 1894년 발발한 청일전쟁의 승리로 이미 한반도에서의 승기를 확보했으며 1902년 영일동맹으로 국제정치적 환경 면에서 우세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러시아는 이러한 일본에 대하여 1903년 39도선 이북의 한반도를 중립 지대로 두자고 제안했으나 한반도 전체를 독점적으로 확보하여 대륙으로 세력을 확장 하려는 일본의 거부로 성사되지 못했다. 대한제국 조정에서는 비밀리에 이루어진 열강간의 흥정을 잘 알지 못했으므로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목차

【한글초록】
Ⅰ. 머리말
Ⅱ. 19세기 분할안
Ⅲ. 20세기 초 중립지대안: 1903년 러시아의 39도선 제안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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