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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동양정치사상사 제1권 제1호
발행연도
2002.3
수록면
79 - 100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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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 후기 특히 정조 연간 이른바 탕평체제기에 군주가 탕평이라는 통치철학에 의해 정치적 통합을 이루기 위하여 실행하는 과정에서 왕권이 어떻게 행사되고 있었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자학적 규범이 어떠한 제약을 미치고 있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조선 후기는 통치이념이 주자학적으로 형성되면서 군신관계와 왕권의 행사에 있어서도 주자학적 규범의 영향을 받게 되었는데 이때 군주의 정치적 행동을 제약한 것은 주자학적으로 규정된 의리론이었다. 물론 이는 군주 뿐만 아니라 신하들에게도 구속성을 지니는 것이었으나 군주가 주자학적 의리론의 구속성을 완전히 탈피하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탕평이데올로기를 신하들에게 강요하려는 데서 군신간 갈등양상이 빚어졌다. 정조가 의리(義理)의 분변문제를 중요한 사안(事案)으로 인식하여 신임 의리와 임오화변의 의리를 명백히 밝혀주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친위세력을 키워 결국 신하의 출사(出仕)와 관련한 의리문제에서 정당성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군주는 탕평(蕩平)과 의리(義理)의 양립을 믿어 자신이 주도하는 정책에 신하의 무조건적인 동참을 요구하였으나, 신하들은 군신분의 (君臣分義)에 입각하여 신하와 군주의 역할을 엄격히 구분하고자 하였고 이 논리에 의거하여 군주의 권력행사를 제한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대도(大道)라는 이념을 표방하여 통합을 모색하고자 하는 정조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하게 하였다. 더구나 의리를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세력간 견제 원리를 무시함으로써 의리(義理)의 천명(闡明)을 저해한 정조(正祖)의 행위는 공론(公論)을 앞세우고 주자학적 의리를 명분(名分)으로 하는 상위의 규범에 종속되도록 하였던 것이며 이 점이 결국 왕권(王權)을 제한하였던 것이다.

목차

논문요약
Ⅰ. 서론
Ⅱ. 통합 이념의 제시와 의리 문제
Ⅲ. 군신분의(君臣分義)를 둘러싼 군권과 신권의 대립
Ⅳ. 통합지향적 군주의리론의 좌절
Ⅴ.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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