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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57號
발행연도
2008.3
수록면
105 - 139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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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한 폭의 그림 속에 그린 실제 경치는 우리가 실경이라고 느끼는 차원과는 또 다른 하나의 실재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림들은 소위 진경산수화라는 틀 속에서 실경을 얼마나 핍진하게 묘사하였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진 채 작품이 배태된 사회문화적인 배경과는 유리되어 연구된 측면이 있다. 이런 학풍 속에서 미술관에서 만나게 되는 20세기 초반의 작품인 安重植의 〈靈光風景圖〉와 같은 그림은 관람자나 연구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것은 이 작품이 영광의 실경을 재현하려는 일반적인 실경산수화가 아니라 특정 주문자의 요구에 의해 신축한 그의 정자에서 조망되는 풍경을 그린, 즉 원림주인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화가가 경물을 조합하여 幻出한 실경도이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이렇게 새로 조성한 園林을 기념한 그림을 그리면서 흥미롭게도 원림 자체보다도 그 곳에서 바라본 풍경을 화면의 중앙에다 비중 있게 그린 작품들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鄭敾의 〈農隱堂望六岡峴圖〉와 〈三勝眺望圖〉, 姜世晃의 〈知樂窩圖〉와 〈屋後北眺圖〉와 같은 작품들은 모두 자신의 원림에서 밖을 바라보는 원림 주인의 시선 앞에 한 폭의 산수화가 펼쳐지는 것처럼 조망되는 주변 풍경을 화면의 주된 제재로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이것은 새로 조성한 자신의 원림을 기념하면서 신축한 건물보다 그곳에서 조망되는 경관을 좀더 강조하게 된 당대인들의 인식의 변화를 수반하여야 가능한 일이었다.
본 연구는 조선 후기 사대부가의 소유지와 주변 경관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그에 따른 회화 양식의 변화에 주목하여 원림주가 자신의 집에서 조망하는 경관을 그림의 주된 제재로 삼은 ‘家園眺望圖’가 어떠한 사회문화적인 배경에서 출현하게 되었는지를 살핀다. 이와 관련하여 본 논문에서는 특히 조망의 개념 중에서도 자연 경관을 사람이 직접 찾아가지 않고도 집안에서 조망하여 즐기도록 하는 경관도입의 방식인 借景論에 주목하였다. 흥미롭게도 집 안으로 담 밖의 멀리 보이는 풍경이나 이웃한 경물을 가리지 않고 주변의 빼어난 승경을 끌어오는 遠借, 隣借, 仰借, 俯借, 應時而借와 같은 심화된 차경에 대한 인식을 金昌翕과 黃胤錫의 문집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김창흡의 “借景南隣視我廬”나 황윤석의 “新塘借景直樓西”라는 언급은 18세기에 차경에 대한 인식이 조선 지식인 사회에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 외에도 집 안에서 조망하는 자연관인 차경은 한 폭의 그림과 같으며 벽에 그려진 그림은 창 밖의 실제 경관과 같이 느껴질 수 있다는 차경론에 대한 인식이 이 시기 문사들의 문집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소위 ‘江山如畵論’과 관련된다는 점을 밝혔다. 한편 조선후기 가원조망도에 빼어난 자연경관 외에도 무덤이던 폐허가 된 古城이건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원림 주변의 유명한 유적이나 명소들을 조망의 주요 경물로 적극적으로 선택한 점도 차경론과 관련하여 주목을 요하는 부분이다.
이 논문의 또 다른 주된 논지 중의 하나는 당대의 새로운 형식의 원림도가 건축적 측면에서의 실제 造園과 하나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연결되는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본고에서는 정선의 가원조망도의 형식이 造園에서 차경의 기법을 활용한 원림을 그린 강세황의 〈지락와도〉의 형식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강세황이 지락와에서 조망되는 중심 경물로 〈지락와도〉의 화면 중앙에 그린 담 밖의 연못은 18세기 중엽 이후 실제 조원에 있어 차경을 위해 집 밖에 조성한 연못으로 판단된다. 집 안의 높은 곳에서 바라본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하기 위해 담 밖에 조성한 연못이 집 안의 조망자를 위한 차경의 한 방법이었을 가능성은 강세황과 동시대 문사인 황윤석의 『?齋遺藁』에 실린 시구 중 “새로 연못을 만들어 樓의 서쪽 경관을 끌어온다(新塘借景直樓西)”라는 구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강세황이 자신의 처소인 畵扇樓의 앞창을 扇形으로 만들어 집 안에 앉아서 조망하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강산의 경관을 한 폭의 그림과 같이 보이도록 하였다는 기록은 18세기 후반에 차경이 건축적으로 실행되었음과 차경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지닌 화가에 의해 가원조망도의 형식이 제작되었음을 말해준다.
강세황의 예는 조선 후기 사회에서 가원에서 바라보는 차경은 그림처럼 인식되고 있었으며 집안에 그려진 가원조망도는 자신의 원림에서 바라본 차경, 즉 소유지 주변의 眞景 그 자체로 재인식 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런 측면에서 가원조망도는 실제 조망되는 경관을 화폭에 담은 그림이라기보다는 대개 八景으로 정형화되던 주변의 가장 좋은 경치를 조합하여 원림주인의 시야로 끌어 들인 형식이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본고에서 다루는 ‘가원조망도’는 ‘家園望八景圖’로도 통칭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造園論으로서의 借景과 산수화
Ⅲ. 조선 후기 사대부의 借景에 대한 인식과 ‘江山如畵論’
Ⅳ. 鄭敾과 새로운 형식의 家園眺望圖
Ⅴ. 姜世晃의 〈知樂窩圖〉와 조선 후기 造園에서의 차경의 實行
Ⅵ. 맺음말: 安中植의 〈靈光風景圖〉와 그려진 차경을 통해 재인식되는 실경
국문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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