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구 정신문화연구) 정신문화연구 2006 여름호 제29권 제2호 (통권 103호)
발행연도
2006.6
수록면
35 - 65 (3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글은 『주자가례』의 조선 중기의 전개를 제례를 통해 재구성한 것이다. 조선 초기에 행용(行用)의 차원에서 강조되던 주자가례가 중기에 이르면 이론적 탐구와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 이와 함께 제례서가 대거 등장하고 제례에 관한 논쟁이 활성화되는데, 그것은 사림에 의한 성리학 이론의 심화와 예론 및 예학의 발달이라는 사상적 배경 위에서 가능하였다.
이 시기 제례에 관한 일련의 논쟁들은 한국사회에 일반화된 유교적 제사문화의 정착 과정을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즉 주자가례가 일상의례의 전범으로 자리 잡기까지, 경합하는 다양한 차이의 논쟁을 겪어야 했다. 제례의 쟁점들은 절차나 형식 그 자체에 목적이 있기보다 재산상속이나 신분승계와 같은 사회적 권력을 분배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주자가례를 전범으로 하는 명분론과 국속(國俗)을 존중하는 현실론이 대립하였고, 결국은 의리 명분론이 득세함으로써 조선 후기에 주자가례의 대중화가 가능하였다.
제사의 본 뜻이 조상과의 친교를 통해 삶의 근본적 의미를 성찰하는 ‘보본반시(報本反始)’에 있다면, 그 의례 형식은 신분과 젠더 등 사회적인 다양한 권력관계를 관철시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조선 중기의 제례문화는 결속과 배제의 범주를 부계주의, 적계주의, 장자주의, 남성주의로 재편성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주자가례』의 도입과 제례의 향방
Ⅲ. 『주자가례』의 확대와 제례 연구의 활성화
Ⅳ. 조선 중기 제례문화의 두 측면
Ⅴ. 결론
참고문헌
국문요약
English Abstract

참고문헌 (29)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0-151-001725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