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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구 정신문화연구) 정신문화연구 2006 가을호 제29권 제3호 (통권 104호)
발행연도
2006.9
수록면
33 - 68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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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영조 이전 시기 위정자들이 궁궐명명의 기준을 국가의 공적공간임을 표상하여 ‘국가의 융성,’ ‘유가 덕목,’ ‘승경의 향유,’ ‘건물의 기능’ 등에 두었으나 영조는 궁궐의 일부 건물을 사적 공간으로 인식하여 개인적 추억과 추모를 궁궐 명명의 기준으로 두었음을 밝혔다. 또한 이와 같은 명명의 배경으로 영조 만년 생활의 특징인 정침이 아닌 집경당에서의 30년 생활, 어제의 다작(多作)과 독특한 문체 창조 등을 들었다.
영조가 경희궁의 정침(正寢)인 융복전(隆福殿) 보다 회상전(會祥殿)을 숙종(肅宗)의 상징물로 여긴 이유는 영조가 7년간 ‘억석와(憶昔窩)’라 이름 붙인 사알방(司謁房)에서 회상전의 선왕을 시탕(侍湯)했기 때문이며, 보경당(寶慶堂)을 ‘탄생당(誕生堂)’이라 명명한 이유는 생모에 대한 예우로 붙인 것으로 보았다. 경선당(慶善堂)은 왕자의 거처였는데 영조는 부모에게 귀여움을 받은 경험을 바탕으로 부모에 대한 ‘추모당(追慕堂)’이라 명명하였다. 집경당(集慶堂)은 영조 만년의 생활 공간으로 본래 예연당(蘂淵堂)이던 이름을 숙종이 집경당으로 개명하였고 영조는 종용당(從容堂), 정와당(靜臥堂) 등의 별명을 붙였다. 함일재(咸一齋)는 창의궁(彰義宮)의 한 건물로 영조는 이 ‘구저(舊邸)’를 자식과 손자까지 추모하는 가족 추모 공간으로 표현하였다.
이외에도 영조는 궁궐 주변 경물 중 본인과 관계된 곳을 ‘추모동(追慕洞),’ ‘추모현(追慕峴)’ 등으로 명명하여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특성을 일반성으로 확대하려고 하였다. 이는 궁궐을 왕으로서의 위정 공간으로 여기거나 개인적 건물을 사대부의 자성공간으로 삼아 명명하던 방식과는 아주 달라진 양상이다. 이로 볼 때 조선후기의 구체적 실상과 일상성을 중시하던 풍조는 왕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알게 한다.

목차

Ⅰ. 서론
Ⅱ. 영조시대 이전 궁궐에 대한 인식 양상
Ⅲ. 영조의 궁궐 생활과 영조어제(御製)
Ⅳ. 영조의 궁궐 인식
Ⅴ. 평범한 궁궐 명칭의 일상성
Ⅵ. 결론
참고문헌
국문요약
English Abstract

참고문헌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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