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Vol.8
발행연도
2005.8
수록면
53 - 83 (31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고조선(古朝鮮)은 한국사의 첫 국가로서 한국사의 인식체계에서는 ‘단군(檀君)’, ‘기자(箕子)’, ‘위만(衛滿)’ 등 3개의 성격을 달리하는 존재와 연결된 정치체가 계기적으로 고조선으로 통칭되는 역사를 구성하여 나타나고 있다. 이는 고조선의 역사를 전하는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를 중심으로 한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 기록과 국가적 성장이후 중국과의 관계가 중심이 된 《사기》와 《삼국지》가 인용한 《위략》 기록 등에 차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고조선과 관련된 고고학적 문화양상은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 및 지석묘(支石墓)와 石棺墓로 대표되는 靑桐器文化를 필두로 철기문화단계까지 연결되고 있다. 이같은 문화는 中國系 靑銅器文化와는 구별되는 遼東半島, 東北滿洲 및 韓半島에 분포하였다. 특히 중국과는 春秋ㆍ戰國時代 및 秦ㆍ漢교체기에 朝鮮이란 존재로 다양한 정치세력과 조우하였다. 또한 衛滿朝鮮시대를 전후하여 匈奴로 대표되는 騎馬遊牧勢力과의 교류도 있었다. 이같이 고조선은 이들과의 정치, 군사, 경제적 교류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경험을 축적하였으며 정치적 성쇠과정을 통해 중심지와 영역의 변화도 수반되었다. 고조선문제에 있어 가장 많은 논란과 쟁점이 부각된 문제는 中心地문제였다. 이는 고조선의 중심지가 한반도 특히, 平壤이 고조선의 중심지였다는 平壤中心說과 遼東지역 遼河 또는 大凌河를 중심한 지역이 고조선의 중심지로서 존재하였다는 遼東中心說로 그리고 요동지역에서 대동강지역으로 이동하였다는 이동설로 나뉘어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른 패수, 왕검성 위치 등의 역사지리논쟁이 고조선문제에서 여전히 남아있다.
한편, 고조선은 위만조선단계에서 漢의 대결구도속에 전쟁을 통해 정치적 붕괴와 한 군현체계에 의한 통제를 경험하였다. 그러나 이는 곧 고구려 등에 의해 축출되고 친중국적 토착세력과 연결된 낙랑으로 명맥이 유지되고 고조선은 후대 역사체에 의해 계승되었다.

목차

Introduction
Studies on Tan‘gun and Kojos?n
Perceptions of Kojos?n Territory
Issues Related to the Records of Tan‘gun
Conclusion
〈국문초록〉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09-911-018437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