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60號
발행연도
2008.12
수록면
35 - 66 (3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조선시대 왕실용 자기를 제작하는 沙器所는 당시 御膳을 담당하는 사옹원에 설치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두 가지 문제점을 제기할 수 있다. 첫째, 磁器를 제작하는 일은 吏曹가 아니라 工曹에 분장된 업무였다는 점, 둘째 사옹원 이전에 御膳을 담당하던 司膳署에는 사기소가 설치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본고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려말 원간섭기 이후부터 조선초 사옹원에 관요가 설치되기까지 왕실용 자기의 제작과 관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옹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주력하였고, 고려말ㆍ조선초 왕실용 자기의 제작 체계에 대하여 몇 가지 새로운 점을 밝힐 수 있었다.
첫째, 고려말 원간섭기 이후부터 왕실 재정의 고갈과 관제의 혼란 등 불안정한 정치 상황에서, 국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내시들이 왕실 의례나 왕실 재정 관사에서 사용되는 청자의 제작과 수취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둘째, 고려 말기 이러한 내시의 역할이 성중애마의 하나였던 사옹으로 이어져서, 사옹은 국왕의 직속 내시 기구로 內用?器를 監造하고 조달하는 직무를 수행하였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셋째,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면서, 사옹은 사옹방으로 吏曹에 편제되었다. 사옹방은 내시가 주축이 된 품계가 없는 왕실 직속기구로서, 왕실용 자기의 제작과 관리에 관여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넷째, 왕실용 자기 제작에서 사옹방의 監造 기능과 친왕실적인 성격은 결국 吏曹에 속한 사옹원에 왕실 자기의 제작을 전담하는 沙器所가 설치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다섯째, 사기소의 설치는 사옹방이 왕실용 자기의 監造 뿐만 아니라 製作까지 담당한다는 의미이다. 즉 자기의 제작비용이 국가 재정으로 사용되어야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정식 관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따라서 1467년에 사옹원이라는 정식 행정기구로 개편되고 녹관을 둔 이후에 국가재정으로 그릇을 만드는 관요로서의 사기소가 설치될 수 있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왕실용 자기의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監造인데, 즉 왕실용 자기의 제작을 감독할 수 있는 적임자는 왕실과 긴밀한 관계 속에 있는 內侍였다. 중국의 남송이나 명의 경우, 황실용 자기의 제작에서 내시는 그릇의 제작을 감독하는 監造官으로, 정식 행정처인 工部는 가마 설치ㆍ재료비ㆍ공장의 인건비 등 실제 제작 과정을 당당하였다. 그러나 조선은 중국과는 달리 吏曹에 속한 사옹원에서 監造와 製作을 모두 담당하는 특수한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이러한 상황은 고려 말기경부터 왕실용 자기 제작에 관여했던 내시의 역할이 고려말 司饔과 조선초 사옹방으로 이어진 것이며, 사옹방의 監造 기능과 천왕실적인 성격은 결국 吏曹에 속한 사옹원에 왕실 자기의 제작을 전담하는 沙器所가 설치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고려말 銘文靑磁의 성격과 제작 체계
Ⅲ. 高麗末ㆍ朝鮮初 ‘司饔’을 통해 본 王室用 磁器의 제작 체계
Ⅳ. 司饔院에 沙器所를 설치하는 원인과 시기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09-609-019115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