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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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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32號
발행연도
2009.12
수록면
173 - 193 (2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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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갑사에는 道詵ㆍ守眉碑가 있다. 이 비는 신라말의 승려 도선과 조선초의 승려 수미를 기린 것이다. 도선은 9세기에 도갑사 부근 구림마을에서 태어나 고려시대에 국사로 추증된 풍수지리에 능통한 인물이고, 수미는 15세기 전반에 도갑사로 출가하여 세조때 왕사가 되어 도갑사를 중창한 인물이다.
도선ㆍ수미비는 1637년에 시작되어 1652년에 건립되었다. 비의 총 높이는 513cm로 조선 최대의 작품이고 귀부와 이수의 조각도 웅장하고 정교하다. 비의 내용은 대부분 도선국사의 탄생과 생애, 그리고 도선이 풍수도참설에 뛰어난 능력을 지녀서 그로 인한 국가적인 이익과 국난극복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은 유교를 정치 이념으로 삼아 불교를 탄압하였다. 그러나 도선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전해지는 풍수도참사상은 고려시대에는 비보사탑설을 중심으로 한 불교적 수용으로,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효사상과 결합된 음택풍수로 민간에 널리 확산되어 유행하였다. 풍수도참설의 유행은 도갑사 도선ㆍ수미비 건립의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도선ㆍ수미비는 병자호란이 일어난 1637년에 건립이 시작되었고, 건립에 참여한 인물들은 비 건립당시 대군과 정승, 육조당상 등 조선시대 최고의 유학자 고관대작과 대표적인 승려들이다. 비의 형식 또한 삼전도비와 유사하여, 도선ㆍ수미비가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의 국가적 위기를 맞아 풍수도참설에 의지하여 민심을 수습하고, 심리적 안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정치ㆍ사회적 염원에 의해 건립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또 도갑사에서는 조선시대에 왕사를 지낸 수미와 도선을 함께 비를 세워 기리면서 임란이후 사찰의 재건과 중흥을 도모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 道岬寺와 道詵國師ㆍ守眉王師
Ⅲ. 道詵ㆍ守眉碑의 形式과 內容
Ⅳ. 道詵ㆍ守眉碑 製作 背景
Ⅴ. 맺는말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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