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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황보경 (세종대학교)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37輯
발행연도
2010.7
수록면
77 - 116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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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세기 한반도는 삼국간에 한강 본류역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점령전을 펼쳤고, 북한강과 남한강 유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북한강 유역은 한강 본류역과 영동지방 사이에 위치하여 삼국의 문화는 물론 말갈이나 낙랑 등의 영향을 받은 자취가 모두 남겨진 곳이다.
이 글은 북한강 유역에서 조사된 삼국시대 고분의 조사현황을 파악해 보고, 분포와 입지, 구조적 특징, 출토유물 분석 등을 통해 고분의 축조주체와 그 배경, 시기를 살펴 본 것이다.
고구려는 4세기 말~5세기 초 백제 한성 공략과 신라로의 파병을 계기로 한반도 중남부 지역으로 진출하기 시작하며, 여러 곳에 유적과 유물을 남겨 놓았다. 북한강 유역에서는 석실분들이 대표적인 유구로 가평과 춘천, 홍천에서 모두 확인되었으며, 홍천 역내리나 철정리 같은 유적에서는 주거지나 토기류가 출토되기도 했다. 다만, 석실분에서 출토된 부장품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축조시기를 추정하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최근 한강 본류역에서 조사된 고구려 석실분들과 비교해 본다면 5세기 중반 이후에 축조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고분의 규모가 크지 않고, 벽화 등이 없으며 구조적인 면에서 견고하지 못하다는 점, 위세품 등이 발견되지 않아 피장자들의 신분이 매우 높지는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알려준다고 생각된다.
신라 석실분들은 가평 대성리와 홍천 역내리의 것이 서로 입지와 구조 및 장단비 등에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부장품 중 부가구연장경호나 고배도 그 양식으로 보아 축조시기가 6세기 후반부터 7세기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편년된다. 신라는 551년에 북한강 유역으로 올라와 점령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까지는 홍천 역내리 고분군이 대표적 유적으로 인정되지만, 가평 대성리에서 확인된 석실분과 비교해 볼 때 축조수법이 달라 신라인들의 영역화 과정이 단선적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암시해 준다고 생각된다. 또한 피장자들의 신분은 홍천 역내리 고분의 경우 무기류가 눈에 띤다는 점에서 군인일 가능성이 있고, 가평 대성리의 피장자들은 철기를 다루었던 사람들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들 고분들의 축조시기가 6세기 후반대로 편년되는 만큼 춘천이나 가평 지역에서의 추가 조사자료 확보가 기대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고분 조사 현황
Ⅲ. 고분의 특징과 출토유물
Ⅳ. 고분의 축조주체와 배경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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