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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관수 (민족사관고등학교)
저널정보
한국민요학회 한국민요학 한국민요학 제29집
발행연도
2010.8
수록면
115 - 160 (4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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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러리는 급격하게 변모했다. 불과 70여 년 전에는 어러리라는 노래명이 정선은 물론 강원도 전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이제는 그 흔적조차 발견하기 어렵다. 노래명은 물론 소리 자체도 변모했고, 어러리에 대한 가창자들의 향유의식마저 변화했다. 이러한 변화는, 민요는 구전된다는 측면만으로는 부분적으로 해명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문화적 측면에서 그 해명을 시도했다.
1930년대에는 아리랑이라는 노래명보다는 어러리라는 노래명이 강원도에서 보편적으로 전승되었다. 그 당시 어러리가 자족적으로 전승할 때에는 개인별, 지역별로 박자, 선율 등이 다양했다.
강원도에서 자생하던 모민요인 어러리는 서울에 유입되어 자민요인 ‘정선아리랑’을 생산했다. 그 자민요는 사람들의 활발한 왕래, 축음기나 라디오 등의 문명기기의 도움을 받아 모민요인 어러리를 축출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이러한 근저에는 무엇보다도 음반 생산업자, 민요 연구자, 유관기관들의 민요에 대한 오해가 자리하고 있다. 음반 생산업자들은 민요를 삶을 구성하는 한 요소를 보지 않고 단순히 오락의 대상으로 활용했다. 그들은 결과적으로 민요를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했다. 민요 연구자들도 전승 현장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그들의 고정된 민요관에 따라 민요를 재단을 할 뿐이었다. 민요의 정조를 ‘애처로움’ 내지는 ‘한’으로 파악하는 태도가 이를 보여준다. 또한, 정선군청과 같은 유관기관은 민요 자체가 지닌 다양성을 무시하고 노래명이나 악보를 통일화하는 등 편의를 좇을 뿐이었다.
이처럼 외부적 문화 환경의 영향을 받아 어러리가 변화하기도 했지만, 내부적 문화 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기도 했다. 과거 반상의 구별이 심할 때 양반 행세를 하던 사람들은 어러리를 부르지 않았고, 평범한 사람들이나 머슴 등과 같은 사람들이 불렀다. 그런데 축음기나 라디오 등에서 흘러나오는 어러리는 반상을 구별하지 않았고, 해방 후 반상의 구별이 사라지는 문화적 상황도 어러리가 변화하는 데 일조했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면서 어러리에 대한 논의가 더 깊이있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외부적 요인에서 비롯된 민요에 대한 오해를 바탕으로 한 행위들은 전파력을 지녔었다. 음반업자들은 문명기기에 의지해, 민요연구자들은 권위에 의지해, 정선군청등은 조직에 의지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가창자들에게 그들이 만든 소리, 생각을 따르도록 압박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창자들은 적극적으로 어러리를 향유하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향유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어러리를 스스로 즐기는 힘이 소멸되어 간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노래명의 변화
Ⅲ. 소리의 통일화 지향
Ⅳ. 향유의 적극성 상실
Ⅴ. 결론
〈참고문헌〉

참고문헌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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