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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양시은 (서울대학교박물관)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38輯
발행연도
2010.11
수록면
155 - 192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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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만주를 포함한 한반도에서는 일본인 연구자들에 의해 수많은 고고학 조사가 행해졌다. 고구려와 발해 유적 조사 또한 조선인 연구자들이 배제된 채, 일본 연구자들에 의해 독점되었다.
고구려 유적들은 일본의 한반도 진출과 관련하여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고구려 벽화분을 중심으로, 일부 대형 적석총과 도성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실시된 고적조사는 일반적으로 박물관협의회에 고적위원회가 설치되어 「古蹟 및 遺物保存規則」이 공포된 1916년과 조선고적연구회가 설치된 1931년을 기준으로, 1916년 이전을 고적조사 1기, 1916-1930년까지를 고적조사 2기, 그리고 1931년부터 해방까지를 고적조사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발해는 고분 중심의 고구려와는 달리 도성 유적을 중심으로 조사가 이루어졌다.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고구려 유적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된 것과는 달리, 발해 유적에 대한 조사는 1932년 만주국이 성립된 이후에서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이전에는 白鳥庫吉, 鳥山喜一, 鳥居龍藏 등과 같은 일본 관학자들에 의한 답사를 통한 연구만이 진행되었을 뿐이다.
일본인 연구자들에 의해 진행된 당시의 고구려와 발해에 대한 유적 조사는 순수한 학술적인 목적이라기 보다는 일본 정부의 정치적 목적에 부합하여 이루어졌다. 고구려의 경우 중요 유물 수습 및 벽화 고분 발견이 중시되었으며, 대체로 단기간에 이루어진 조사가 대부분이었다. 발해 역시 도성의 성격 규명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대대적인 조사라기보다는 간략한 시굴조사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발해 유적에 비해 월등히 많은 유적이 발굴 조사된 고구려의 경우에도 조사된 유적 수에 비해 제대로 된 보고서는 거의 없었는데, 그나마도 소략한 내용과 함께 도면과 사진만을 일부 제시하고 마무리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다만, 일부 보고서의 경우 국제사회의 홍보를 위한 정치적 목적에 따라 자세한 영문 요약문이 첨부된 것도 있어 기존의 보고서들과 비교되는 것들도 눈에 띈다.
한편, 서울대학교 박물관에는 많은 수의 고구려와 발해 유물이 소장되어있는데, 그 중 일부는 경성제국대학 시절 경성제국대학의 교수들에 의해 수집된 것들이다. 이번 논문에서는 이들 자료에 대한 정확한 출처를 밝힐 수 있었는데, 이후 관련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서울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일제강점기에 수집된 고구려와 발해 유물은 당시 일본 연구자들 특히 경성제국대학연구자들의 고구려 및 발해 유적조사 현황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일제강점기 고구려 유적 조사 현황
Ⅲ. 일제강점기 발해 유적 조사 현황
Ⅳ.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품에 대한 검토
Ⅴ. 일제강점기 고구려ㆍ발해 유적조사의 의미
Ⅵ.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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