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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金昌謙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33호
발행연도
2008.11
수록면
131 - 167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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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년(현종 13) 고려의 동궁관이 설치되었다. 여기에는 왕위의 부자계승이라는 태지 책봉의 기본적인 목적과 함께 현종 자신의 경험이 가장 크게 작용하였다. 현종은 즉위과정에서 겪은 고난과 이것이 빌미기 된 거란의 제2차 침공과 격퇴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왕원강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족내혼은 물론 당시 군사적 실력자와 유력자 및 자신을 추대한 자의 딸들과 혼인하여 지지세력을 확보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무렵에 다시 나타난 「訓?十條」의 제3조는 현종을 압박하였고, 이에 그는 부자계승이 목적인 태자책봉을 하였다. 그러하여 현종은 여러 가지 방법의 개혁정치 중 직제의 개편과 설치과정에서 동궁관을 설치하였다.
현종대 임명된 동궁관직은 태자의 태사, 태보, 소사, 소부, 빈객, 우서자, 우유덕, 중윤 등이다. 그리고 여기에 임명된 인물은 12명인데, 이들은 대부분 知貢擧 출신이며, 宰樞로서 임명되었고, 비록 동궁관 중 하위직 임명시는 재추가 아니었을지라도 그들도 곧 재추로 승진하였다. 결국 현종대 동궁관직에 임명된 인물들은 대부분이 현종과 아주 밀접힌 관계에 있는 자들이다. 그리고 현종대 동궁관직을 역임한 인물들은 태자인 延慶君(德宗)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그의 즉위 후 정치권의 중추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북방정책에 있어서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상반된 견해를 보였다. 그럼에도 현종대는 유교적 관료제가 완비되고 고려 문벌귀족사회의 형성이 일단락된 시기였다.
하지만 현종대에 동궁관이 설치되었다고 해서 이후 왕위계승이 모두 부자계승이 행해진 것은 아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동궁관 설치의 경위
3. 현종대 동궁관 설치의 배경과 목적
4. 현종대 정치세력과 동궁관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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