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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전경숙 (숙명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82輯
발행연도
2017.4
수록면
45 - 84 (40page)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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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010년(현종 원년) 11월부터 1019년(현종 10) 2월까지 치러진 고려와 거란과의 5차례 전쟁을 검토하고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군사제도의 정비 내용을 검토한 것이다. 993년(성종 12) 거란과의 1차 전쟁을 치른 후 고려는 994년 2월부터 거란의 연호를 사용하면서 거란과 우호관계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1010년 康兆가 거란에 통보도 없이 목종을 폐위하고 현종의 즉위를 단행하자 거란의 성종이 그의 처벌을 내세우며 40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침입하면서 제2차 전쟁이 시작되었다. 2차 전쟁으로 고려는 개경이 함락되고 현종이 나주로 피난할 정도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거란 성종이 親政을 시작하면서 성급하게 군사동원을 강행하여 제대로 군사력을 운영하지 못해 고전하였고, 고려는 성종대 이후로 확보한 군사력과 성곽 등을 이용하여 거란에 대항할 수 있었다.
고려는 거란의 회군 조건으로 현종의 친조를 제시하였지만 실행하지 않았고, 거란과의 전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군사제도의 정비를 추진하였다. 우선 中臺省으로 통합되었던 중추원을 다시 설치하고, 무반직을 중추사가 겸임하게 하여 軍機의 기능을 더욱 강화하였다. 도병마사와 중방 등 회의기구를 설치하여 군사문제를 의논하게 하였고, 광군도감을 광군사로 개편하여 군액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개경의 송악성을 중수하는 등 수도권 방어를 강화하여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고려와 거란과의 3~6차 전쟁은 현종이 친조를 이행하지 않고 강동 6주의 반환을 거부하면서 치러졌다. 이때의 전쟁에서 주목되는 것은 고려가 치밀한 전략전술을 통해 전쟁을 수행했다는 점, 전쟁 과정에서 군사지휘체계가 명확히 드러난다는 점, 군사력의 파악이 정확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등이다. 이는 거란과의 2차전 이후 정비한 군사제도의 성과가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고려는 군사를 격려하는 한편 비대해진 군사규모를 정리하여 정예화하고, 안정적으로 국방력을 관리하기 위한 장치들을 정비하였다. 우선 전공을 세운 무반에게 문반직을 겸하게 하였고, 열병을 정기적으로 진행하여 군사력을 점검하는 한편 군사력의 정예화를 추구하였다. 군사들 중 연로한 부모를 두었거나 병에 걸린 경우 군역에서 면제하였다. 이와 더불어 나성을 완공하여 개경 방어를 강화하였고, 도로망과 봉수를 재정비하여 전쟁을 수행할 때 군대의 이동이나 개경과 변방과의 군사적 연락을 원활하게 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현종의 즉위와 거란의 2차 침입
Ⅲ. 거란과의 2차 전쟁 이후 군사제도의 정비
Ⅳ. 거란과의 전쟁 종결과 군사제도의 조정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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