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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명진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34집
발행연도
2017.11
수록면
407 - 445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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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천안지역은 왕실과 깊은 연관을 가진 사찰이 여럿 있었다. 930년 8월에, 태조 왕건王建은 천안부를 설치하였다. 당시 미래에 모든 중생을 구원한다는 미륵불을 신봉한 신앙이 널리 유행하였다. 이곳의 미륵신앙 사찰은 왕자산(태조산)의 유려왕사와 마점사였다. 936년 9월에 고려군은 후백제를 상대로 통일전쟁의 마지막전투인 일리천전투를 벌이었다. 그 준비 기지가 천안부였다. 그 전투를 준비하는 힘든 훈련 과정 속에서 군사들에게 정서적 평안을 준 곳은 유려왕사와 마점사였다.
왕건의 손자인 현종顯宗은 어린 시절이 불우하였다. 천추태후는 자신의 불륜 아들을 왕위에 앉히려고 여러 차례 현종을 제거하려 하였다. 하지만 현종은 살아남아 1009년에 즉위하였다. 그런데 천안 천흥사와 홍경사는 현종대에 번창하였다. 천흥사는 왕건과 직간접으로 연관된 사찰이었다. 하지만 현종대에도 천흥사는 번창하며 고려 왕실과 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이웃한 홍경사는 현종이 창건하였다. 이곳에서 현종은 불쌍한 아버지를 연상하여 절을 창건하였다.
한편, 고려 후기에는 천안 광덕산의 개천사가 고려왕실과 깊은 연을 가지고 있었다. 개천사는 종실인 왕면王沔이 시주하여 다시 창건되었다. 왕면은 왕위계승 자격도 있다고 볼 수 있는 인물이었다. 이러한 왕면이 왜 개경에서 먼 곳인 개천사 창건에 관여했는지 궁금하다. 왕면은 청장년 및 노년을 무신정권기에 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왕위에 욕심이 없다는 점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천안지역에서도 하필 개천사 자리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는 그 자리가 풍수상 명당이었기 때문이다.

목차

요약
1. 머리말
2. 태조 왕건의 천안부 설치와 유려왕사·마점사
3. 현종의 수난과 천흥사·홍경사
4. 왕면의 개천사 중창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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