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崔宣一 (문화재청)
저널정보
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35號
발행연도
2011.6
수록면
161 - 183 (23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논문에서는 전북 완주 모악산 대원사 대웅전에 봉안된 목조불상의 제작시기와 조각승을 추정하였다. 대웅전에는 석가불을 중심으로 아미타불과 약사불로 구성된 목조삼세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석가불은 높이가 127cm, 무릎 너비가 91.0cm인 중대형불상이다. 바깥쪽에 걸친 대의자락은 석가불이 오른쪽 어깨에서 복부까지 내려와 완만한 U자형을, 약사불이 한쪽 끝이 뾰족한 형태이다. 나머지 대의자락은 두 겹으로 접혀 오른쪽 어깨에 비스듬히 걸친 후, 팔꿈치와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간다. 하반신을 덮은 대의자락은 복부에서 오른쪽으로 몇 가닥 완만하게 펼쳐져 있다. 특히, 왼쪽 무릎을 감싸고 있는 소매 자락은 17세기 후반 활동한 색난이 만든 불상과 유사하지만, 왼쪽 측면이 나뭇잎 모양으로 날카롭게 처리되어 차이가 난다. 세 구의 불상은 구부린 손가락 사이에 작은 구슬 하나 또는 두 개를 표현하였다.
사찰에 소장된 대웅전 불상 조성발원문은 조성연대와 연화질 등이 없고, 시주자만 언급되어 있어 별지에 작성된 앞부분이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조성발원문에 언급된 시주자는 313명으로, 그 가운데 스님은 80명이다. 이 스님들을 같은 사찰에 봉안된 1688년에 제작한 명부전 불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과 비교하면, 두 개의 불상 제작에 모두 참여한 스님은 쌍옥 밖에 없다. 그리고 이 스님들의 활동을 17세기 중?후반 전주와 완주 일대 사찰에 남아있는 문헌기록과 비교해 보면, 80명 가운데 19명은 1630년대-1650년대 불상과 범종 제작 등에 시주자로 언급되어 있다.
목조불상의 바닥과 대좌 제작에 사용한 소나무는 수피부가 남아있지 않지만, 아미타불은 1580년-1662년, 약사불은 1590년-1666년 등의 연륜이 남아있어 삼세불의 연대기는 1580년-1666년으로, 충북 영동 영국사 대웅전 건물의 연대기와 중첩된다. 따라서 불상을 만든 나무는 1666년 이후에 벌채되었음을 연륜분석을 통해 알 수 있다.
대원사 대웅전 불상은 얼굴의 인상, 착의법, 승각기 상단 처리, 손가락 사이의 작은 구슬 표현 등이 조각승 희감이 제작한 1661년 전남 강진 무위사 목조지장보살좌상과 1666년 전북 군산 불주사 목조아이타여래좌상과 유사하다. 또한 충남 공주 신원사 극락전과 명부전 불상, 경남 통영 안정사 불상과 대의 처리와 승각기 표현 등이 비슷하다. 17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회감은 같은 시기에 활동한 조각승 운혜, 색난, 단응, 승호 등이 조성한 불상과 많은 차이가 있다.
따라서 완주 대원사 대웅전 목조불상은 1670년을 전후한 시기에 조각승 회감과 그 계보에 속하는 스님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 대웅전 목조불상의 형식적 특징과 조성발원문
Ⅲ. 목조불상의 수종과 연륜 분석 및 시주자를 통해 본 제작시기
Ⅳ. 목조불상의 조각승 推論
Ⅴ. 맺음말
Abstract

참고문헌 (18)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3-910-000478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