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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안상경 (충북대)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회 제27호
발행연도
2008.7
수록면
173 - 204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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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와 관련한 기록물은 ‘울릉도가 어느 때든 無主地가 아니었다’고 웅변하고 있다. 울릉도는 국가의 정책과 별도로 익명의 한국 농민이나 어민들이 행하였던 농?어업 관행과 생활 경험이 복합?다층적으로 축적된 삶의 공간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기초로, 본 논의에서 울릉도에 언제부터 마을신앙이 존재하였으며, 오늘날 전승되고 있는 마을신앙은 어떠한 양상이며, 또 그것이 조선 초기 海禁政策에 따른 搜討나 일본인의 侵漁 및 일제강점기라는 질곡의 세월을 거치면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살펴보았다.
문헌자료로서 李奎遠의 ?鬱陵島檢察日記?를 통해 고종연간에 학포, 태하, 저동, 나리동 등지에 산신당이 존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제당의 형태나 위치 또는 대상 신격으로 미루어 울릉도 선주민의 생업 현장이 ‘바다’가 아니라 내륙으로서 ‘산야’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구비자료로서 ‘태하신당의 유래’를 통해 태하신당의 건립 시기와 대상 신격을 확인할 수 있으며, ‘성인봉의 산신’을 통해 성인봉 산신당의 유래 및 대상 신격, 선주민의 생업 활동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해금정책 및 이에 수반한 수토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에서든 울릉도에 사람들이 이주?거주하였으며, 더불어 원주지의 마을신앙으로서 산신신앙 및 성황신앙이 정착?전승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 울릉도 마을신앙은 산신제 계열과 해신제 계열로 대별할 수 있다. 산신제는 마을 전체가 신봉하는 대단위 규모의 제의로서, 해신제는 어업 종사자가 신봉하는 소단위 규모의 제의로서 별개로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鬱陵島檢察日記”를 통해 짐작컨대, 당시 울릉도에는 해신제가 존재하지 않았다. 선주민은 어업을 생업으로 삼더라도, 풍어 및 풍랑으로부터 신변의 안전을 ‘해신’이 아니라 ‘산신’이나 ‘성황’에게 기탁하였다. 반면 해신제 계열은 대부분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일본인에 의해 형성된 일본인의 신앙이다. 근세기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일본인의 침어 및 일제강점기라는 질곡의 세월이 한민족의 전통문화로서 울릉도 마을신앙을 크게 변질시켜 놓은 것이다.
울릉도 마을신앙에 대한 통시적?공시적 연구는 울릉도가 한민족의 영토로서 한민족의 생활?문화권이라는 사실을 해명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울릉도 선주민이 영유하였던 해양?도서신앙의 지속 및 계승 차원에서 울릉도 마을신앙에 대한 조사 및 연구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믿는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울릉도 마을신앙의 역사적 근거
3. 울릉도 마을신앙의 전승 양상
4. 울릉도 마을신앙의 지역적 특수성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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